1970년 천전리 일대서 처음 발견
이듬해 대곡리서도 바위그림 찾아
세계 最古 고래사냥 그림 ‘희귀성’
李대통령 “국민과 마음 깊이 환영”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42일 침수
개선 대책 추진됐지만 사업 지연
세계유산위 ‘진척 사항 보고’ 권고
금강산도 등재… 北 역대 3번째
“반대 의견 있으십니까? 없으므로 채택합니다.”
12일(현지시간) 오전 10시20분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이끄는 니콜라이 네노프 의장의 말이 끝나자 한국 대표단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선사시대 한반도 문화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우리나라의 17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는 순간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날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구성된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암각화가 2010년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지 15년 만이다.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발견된 지 50여년 만의 쾌거이기도 하다.
1970년 12월24일. 한 주민의 제보를 받은 동국대 불교 유적조사단은 울산 울주군 천전리 일대에서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난생처음 보는 신비한 바위그림에 매료돼 들떴다. 높이 약 2.7m, 너비 10m 바위 면을 따라 각종 기하학적 도형과 글, 그림 등 620여점이 새겨진 ‘울주 천전리 명문(銘文)과 암각화’였다.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포함돼 사료적 가치도 높다. 이듬해 12월25일에는 천전리 암각화로부터 2㎞ 떨어진 곳에서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 사냥 장면이 생생히 새겨진 바위그림을 찾아냈다. 빼곡히 그려진 그림이 312점으로 확인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다. 특히 50마리가 넘는 고래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담긴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흔적으로 알려질 정도로 희귀하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의 암각화’는 선사시대부터 약 6000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며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선사인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13일 통화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유네스코 정신에 가장 잘 부합하고 있다”고 등재 의미를 설명했다. 울산 시민들은 이날 “울산과 대한민국의 자랑인 문화유산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뿌듯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울산 곳곳에는 ‘반구천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 환영’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걸작이 세상에 알려진 지 50여년이 지나 비로소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유산으로 인정받았다”며 “온 국민과 함께 마음 깊이 환영한다”고 밝혔다.

◆세계적 유산 훼손 막을 대책 시급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오랜 기간 침수 등 온갖 수난을 겪으며 훼손 우려가 컸던 ‘반구천의 암각화’를 영구 보전하는 것도 중요한 숙제가 됐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는 1965년 대곡천 하류에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사연댐이 들어선 뒤 침수로 몸살을 앓았다. 사연댐 저수지 수위 53~57m 구간에 있는 이 바위그림은 많은 비가 내릴 때마다 물에 잠겼다가 수위가 낮아지면 물 밖으로 노출되기를 반복했다. 2014∼2023년 10년 동안 암각화가 물에 잠긴 날은 연평균 42일이다. 빗물에 떠내려온 각종 오물에 암각화가 뒤덮이기까지 하면서 일각에서 ‘물고문’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에 ‘가변형 임시 물막이’ 건설이 추진됐으나 기술적 결함 탓에 중단됐고, 문화유산 보존과 지역 식수원 확보 문제로 국가유산청과 울산시가 대립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주년인 2021년 사연댐에 15m 폭의 수문 3개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마련했다. 이후 환경부와 국가유산청, 울산시 등이 참여한 실무협의회가 구성됐고, ‘사연댐 안전성 강화사업’에 65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착공이 늦어져 2030년에나 완공될 전망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의 암각화’를 등재하면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을 보고하도록 권고했다. 최 전 소장은 “암각화 표면에 이끼, 균류, 조류 등이 자라고 표면 박리와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보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금강산도 이날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2004년)과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를 포함해 3개의 세계유산 보유국이 됐다. 백두산과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산인 금강산은 높이 1638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 폭포와 연못이 어우러지며 사계절마다 다른 절경으로 유명해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으로도 불린다. 태백산맥 북부, 강원도 회양군과 통천군, 고성군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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