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무용수 ‘바리시니코프의 재림’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발레리노 다닐 심킨이 유니버설발레단·예술의전당 기획 공연 ‘백조의 호수’에 출연하기 위해 내한했다.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독일 베를린슈타츠발레단 등 세계 유수 발레단에서 활동한 그는 ‘콩쿠르의 왕자’시절이던 22년 전 15세 때부터 방한해서 국내 무대에 섰지만 전막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8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한 시간 남짓 기자들과 일문일답도 가졌는데 “나에게 중요한 건 과정”이라는 확고한 예술관과 직업의식이 돋보이는 무용수였다.
“결과는 결과일 뿐이고 결과보단 과정이 훌륭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스스로보다 더 큰 존재를 위해 얼마나 온전히 투입되었느냐를 중시합니다.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어요.”
1987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무용수를 부모로 두고 태어난 심킨은 어머니로부터 무용을 배우며 아버지와 함께 많은 무대에 섰다고 한다. “어린 나이 때부터 무대에 섰을 때 나타나는 내 안의 진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뭔가를 선사하고 줄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기쁨을 많이 느꼈다”며 “정말 그 모든 것을 무대에 쏟아부어야 하는 순간이 온 16살이 되던 해 스스로 춤을 추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무용수로서 성장 과정을 설명했다.

오랜 기간 정상을 유지한 무용수로서 부단한 자기 관리에 대해선 영양·수면·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심킨은 “영양·수면·정신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대에 서기 위해 필요한 만큼 연습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무용수로서 굉장히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기에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교한 테크닉과 놀라운 고공 점프·회전 등으로 유명한 심킨은 오히려 “몇 바퀴를 도느냐보다 ‘어떻게 끝내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자 무용수 최초로 ‘3연속 540도 회전’을 선보였으면서도 “기술이란 표현을 위한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죠. 저에게 기술은 배경이자 토대이고, 진짜 중요한 건 그 위에 펼쳐지는 ‘표현’이에요.”

오랜 무용수 생활에서 가장 많이 선 무대는 ‘돈키호테’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감정적으로 더 깊이 있는 연기를 해야하는 ‘지젤’이라고 말한 심킨은 ‘백조의 호수’에 대해선 절제의 미학을 강조했다. “그러니까, (‘백조의 호수’에서 기술은) 억제되어야 해요. 물론 통제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회전을 몇 번 하느냐보다 그 회전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고전 발레, 특히 남성 캐릭터에서 현대인으로서 자신을 투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자유를 갈망하고,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은 저에게 매우 친숙합니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발레리노로서는 처음 입단한 김기민을 ‘베스트 프렌드’라고 언급한 심킨은 마린스키 전통이 배어 있는 유니버설발레단 무대에 서는 것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을 나타냈다.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독일에서 오래 활동한 심킨은 “유니버설아트센터 자체와 사람들 사이에서 러시아적인 전통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이 든다. 훌륭한 러시아식 클래스(공동연습)를 받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는데 저 역시 러시아 전통에서 왔기 때문에 집처럼 느껴졌고 몸 상태를 정말 잘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종교는 없지만 20대에 깨달은 건, 예술이 제 존재 안에서 어떤 수준의 영성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술을 창조하고 싶습니다. 신성한 것과 연결되는 예술, 그리고 춤을 통해 그 일을 해내고 싶습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7월 19일부터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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