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KBO리그 전반기 10개 구단을 통틀어 최고의 히트 상품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KT의 ‘코리안 스탠튼’ 안현민(22)이다. 2022년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 38순위로 KT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지만, 그해에 바로 현역병으로 입대한 안현민은 군대 내에서 혹독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지금의 근육질 몸으로 변모했다. 2024년 2월 전역했지만, 2024시즌에도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안현민은 올 시즌 그야말로 자신의 잠재력을 대폭발시키며 괴물 같은 성적을 내고 있다.
안현민의 전반기 성적은 타율 0.356(216타수 77안타) 16홈런 53타점 42득점 5도루. 삼진 36개를 당하는 동안 볼넷도 39개를 골라내며 ‘눈야구’도 되는 선수다. 단순히 홈런만 노리는 ‘공갈포’ 유형의 타자가 아니다. 덕분에 출루율도 0.465, 장타율은 0.648에 달한다.

5월초부터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뛰다보니 아직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해 비율스탯 순위로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부상 없이 후반기에도 출전을 이어간다면 7월말, 8월초쯤에는 규정타석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반기 타율 1위는 롯데의 레이예스의 0.340. 출루율 1위는 KIA 최형우의 0.432. 장타율 1위는 삼성 디아즈의 0.595. 안현민의 전반기 성적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규정타석만 채운다면 ‘타-출-장’ 모두 1위에 오를 수 있다.
안현민의 활약이 더욱 임팩트가 큰 것은 2025 KBO리그가 역대급 투고타저 시즌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0.277이었던 리그 타율은 전반기에 0.259로 2푼 가까이 떨어졌다. 자연히 3할 타자도 절반보다 더 줄었다. 지난 시즌 KBO리그는 24명의 선수가 3할 타율을 찍었으나 올 시즌 전반기에는 10명으로 줄었다. 이 추세로 시즌을 마친다면 리그 타율 0.258을 남겼던 2012년 이후 13년 만에 리그 타율이 0.260에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안현민은 3할 중반대의 타율에 볼넷을 삼진보다 더 얻어내고, 홈런도 뻥뻥 때려내는 만화같은 성적을 내고 있는 셈이다.
안현민이 올 시즌 얼마나 괴물 같은 성적을 내고 있는지는 최근 몇 년 사이 각 타격 부문 수위 선수들의 성적과 비교하면 체감할 수 있다. 안현민의 현재 출루율은 최근 9년 사이 1위다. 안현민의 출루율보다 높았던 선수는 2016년 김태균(당시 한화 이글스·0.475)이 유일하다. 다만 2016년은 타고투저 현상이 극심해 리그 타율이 0.290에 달했던 시즌이다. 보정을 하면 안현민의 성적이 더 위라는 얘기가 된다.
2020년 이후 안현민보다 높은 장타율을 기록한 선수도 단 한 명뿐이다. 2020년 팀 동료 멜 로하스 주니어(0.680)를 제외하면 올 시즌 안현민보다 높은 장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없다.

현대 야구에서 타자의 생산력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지표로 각광받고 있는 OPS(출루율+장타율)는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안현민의 올 시즌 OPS는 1.113으로 2018년 박병호(현 삼성 라이온즈·당시 1.175)만이 올 시즌 안현민보다 높은 OPS를 기록했다. 지난해 38홈런-40도루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KBO리그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KIA 김도영보다도 안현민의 비율스탯이 더 뛰어나다. 이 말은 곧 안현민이 후반기에도 전반기의 ‘포스’를 유지한다면 강력한 MVP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도 안현민은 4.98(스포츠 투아이 기준)을 찍으며 야수 전체 1위에 올라있다. 2위 최형우(3.78)보다 1 이상이 더 높다. 리그 전체를 통틀면 코디 폰세(한화, 5.06)만이 안현민보다 WAR이 더 높다.

wRC+(조정 득점 창출력)도 안현민의 기록이 압도적이다. 현존하는 타격 스탯 중 가장 정확한 타격 스탯으로 꼽히는 wRC+는 100을 리그 평균으로 보고, 110을 기록하면 평균보다 10% 더 득점생산에 기여한다는 의미다. 안현민의 wRC+는 204.9로 리그에서 유일하게 200을 넘긴 선수다. 평균보다 100% 이상 더 득점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안현민은 아직 신인왕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LG 송승기와 2파전을 벌이는 듯 했지만, 전반기를 마친 현재 신인왕 레이스는 MVP급 성적을 내고 있는 안현민에게 기울어져 있는 상황이다.

안현민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할 수 있을까. 후반기에도 전반기 성적을 이어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KBO리그에서 신인왕과 MVP를 한 시즌에 따낸 선수는 2006년 류현진(한화)이 유일하다. ‘전반기 안현민’은 리그 레전드들을 줄줄이 소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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