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트럼프’ 브라질 前 대통령 구명 시도
NYT “관세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타국 정치·사회·군사 등 전방위 개입
일각선 브라질·중국 밀착 가속화 속
‘반미·친중 전선 허물기 의도’ 해석도
룰라 “경제 상호주의법 고려해 처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브라질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 중단을 촉구하며 ‘50% 관세 폭탄’을 부과한 것을 두고 ‘관세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이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정치, 사회, 군사 등 전방위적인 개입 수단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8개국에 8월1일부터 적용할 상호관세 세율을 적시한 서한을 발송하면서 지난 4월 10%의 기본관세를 부과했던 브라질에 대해 50%의 상호관세율을 부과했다.
40%포인트에 달하는 관세 인상에는 정치적 이유가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동등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와 함께 “현 정권의 심각한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라고 정치적 목적을 명시했다. 그는 “브라질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 불명예”라며 “마녀사냥은 즉시 끝나야 한다”고 썼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에게 패한 이후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화’해 친트럼프 인사인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대척점에 서 있는 진보 성향 룰라 대통령을 정치·경제적 위기로 내몰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관세를 이용해 다른 나라의 형사 재판에 개입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은 그가 관세를 얼마나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CNN방송도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들의 국내 정책 결정을 바꾸려고 시도하며 관세 위협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 1월에도 콜롬비아 정부가 미국에서 추방된 콜롬비아 국적 불법 이민자를 수용하지 않자 50% 관세 인상을 예고했고, 사실상 콜롬비아의 항복을 받아냈다.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 등과도 불법 이민과 합성마약 펜타닐 대응 문제를 협상하며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왔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관세’에 대해 ‘반미·친중’ 전선을 허물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브라질은 중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비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의 회원국으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브라질은 이날도 영토를 가로질러 페루 창카이 항구를 잇는 대규모 철도 건설을 위해 중국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룰라 대통령 집권 이후 양국은 빠르게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미국은 일찌감치 창카이 항구에 대해 ‘중국군 교두보’가 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러시아·브라질이 브릭스를 중심으로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묶는 ‘탈(脫)달러’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다 관세 부과나 이란 핵시설 폭격 등 미국 정부의 핵심 정책 비판에 앞장서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는 요인이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7일 브릭스 정상회의 후 “우리는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브릭스의 반미정책에 동조하는 국가는 모두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을 받은 룰라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일방적인 관세 인상은 브라질의 경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며 보복 조치를 시사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언급한 것을 두고 “브라질은 주권 국가로서 외부의 간섭이나 통제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브라질 외교부는 자국 주재 미국 대사대리를 초치했다.
다만 브릭스 회원국들은 이날 브라질이 정치적 이유로 50%의 보복성 관세를 얻어맞게 되자 불똥이 자국에도 튈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브릭스에 대한 경고로 인도 정부가 외교적으로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무역 협상 체결 막바지에 들어선 인도에는 새로운 관세 서한을 보내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대외적으로는 이달 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지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브릭스에 대한 보복 조치가 인도네시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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