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춘천에 사는 이모가 서울에 왔다. 그녀의 여든 네 번째 생일을 춘천이 아닌 서울에서 지내기 위해서였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뒤 가까운 친척은 이모와 나뿐이어서 혼자 사는 이모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쓰인다. 주말이라서 그랬는지 시외버스가 예상 도착 시간보다 늦어졌다. 우리는 터미널에서 만나 바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모는 케이크도 꽃도 선물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장소를 옮겨 이모의 프로필 사진을 촬영했는데 이모는 사진관에서도 심드렁했다. 왜 같은 포즈의 사진을 여러 컷 찍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프로필 사진이 사실 장수 사진인 것을 눈치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 찍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집에 도착해 이모가 춘천에서부터 싸 들고 온 밑반찬이며 간식거리를 풀어 정리했다. 시간이 흘러 터미널로 출발하기 직전 이모는 나에게 부탁이 있다며 드디어 털어놓았다.
이모는 화투를 좋아해서 화투를 같이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분들과 화투를 치고 점심을 같이 먹고 때로는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게 이모의 중요한 일상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분들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실토했다. 그중 한두 분은 나도 같이 만났던 적이 있다. 이모가 잘못한 것도 없지 않지만 그냥 소통 과정에서 생긴 오해 때문으로 보였다.
나는 이모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 생일이 월요일인데 내가 춘천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니, 함께 점심을 먹어 달라고, 점심값은 이모에게 보냈으니 맛있는 걸 드시라고 말했다. 상대방의 반응은 예상대로 별로 좋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같으면 전화를 받을 텐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오후가 되어서야 통화가 되었다. 이모는 서울에 왔을 때와는 달리 신이 난 목소리였다.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고 하면서 바쁘다고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했다.
나이 들수록 옆에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말을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모를 보니 실감이 났다. 이모는 조카가 차려주는 생일상보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이모가 행복해졌으니 나는 좋은 생일 선물을 한 것이겠지, 혼자 뿌듯했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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