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치된 믿음(이성원·손영하·이서현, 바다출판사, 1만6800원)=무속은 모순 속에 있다. 우리는 무속을 미신으로 치부하며 무당을 천대한다. 그러나 실상은 무당의 예언에 조종당하고 무당이 말하는 초자연적 현실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연애와 결혼, 사업, 진로처럼 인생의 큰 결정을 무속에 맡긴다. 이렇게 무속은 보이지 않는 음험한 구석에서 우리의 세계관과 믿음을 형성해 왔다. 저자들은 무속 신앙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범죄 사례를 토대로 추적했다. 10년간 선고된 무속 관련 형사 판결문 320건을 분석해 무속인이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수법(가스라이팅) 등 범죄 유형을 분석한다. 한 사례를 보면 조상굿, 딸 내림굿 등 여러 명목의 굿 비용으로 2억5000만원을 지불한 한 남성은 굿이 효과가 없자 무속인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재판까지 갔지만, 법원은 무속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남성이 굿값에 동의했고, 실제 굿이 이뤄졌으며, 굿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그 비용이 표준화돼 있지 않은 점 등을 무죄 이유로 판시했다.

버릴 수 없는 티셔츠(쓰즈키 교이치, 이홍희 옮김, 안그라픽스, 2만3000원)=세계를 다니며 현대미술과 건축, 디자인을 취재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출판 편집자인 저자가 70장의 버릴 수 없는 티셔츠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정성껏 엮은 책이다. 펑크 공연에서 보컬과 맞바꿔 입은 티셔츠,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티셔츠, 헤어진 연인의 냄새가 밴 티셔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고 매일매일 애용해 헐어버린 티셔츠, 충동구매한 뒤 단 한 번도 입지 않았지만 계속 꺼내서 보게 되는 티셔츠까지…. 나이, 성별, 직업, 출신지 외에는 아무것도 드러나 있지 않은 70명의 삶과 희로애락을 그들의 티셔츠를 통해 엿본다. 저자가 소개하는 티셔츠는 멋지거나 값비싼 브랜드가 아니다. 티셔츠마다 깃들어 있는 주인의 사적인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책의 또 다른 묘미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경제사(앤드루 리, 고현석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 1만9000원)=미국의 독단적인 ‘스트롱맨’의 부상, 유럽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 심화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그 결과, 수면 위로 드러난 경제 이슈를 좇아 단편적인 정보는 이해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사람이 많다. 이런 독자를 위해 농업혁명에서 시작해 산업혁명, 전후 황금기, 팬데믹 이후로 이어지는 방대한 5000년 세계 경제의 역사를 핵심을 간추려 구성했다.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 속 기술, 정치, 문화, 종교의 발달 뒤에는 ‘경제’가 언제나 동반됐다. 왜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세계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는지, 팬데믹 이후 중앙은행은 왜 급속한 인플레이션을 예측하지 못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단편적 지식보다 과거와 현재 등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 경제 안목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뇌가 멈추기 전에(이승훈, 21세기북스, 1만9000원)=뇌혈관이 갑자기 막히거나 터지면서 발생한 뇌 조직 파괴로 인해 신체 기능의 일부 혹은 전부가 손상되는 질환인 뇌졸중을 예방하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다. 뇌졸중은 다수의 사망 혹은 장애를 유발하는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질병이다. 뇌졸중은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뇌졸중처럼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은 드물다고 저자는 말한다. 뇌졸중을 일으키는 가장 위험한 요인은 바로 고혈압이다. 고혈압 환자의 경우 염분 섭취를 줄이고 체중 감량 및 규칙적인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생활 습관 변경을 6개월 이상 지속해도 개선되지 않으면 의사의 지도를 받아 약물치료를 하라고 권장한다. 책은 당뇨, 고지혈증, 흡연, 음주, 대사증후군, 비만 등 뇌졸중에 영향을 주는 요소에 관해서도 다룬다.

전쟁과 나(유은실, 이소영 그림, 우리학교, 1만6800원)=할머니는 집 안 가득 퍼진 불개미 떼를 보며 자신이 9살에 겪었던 전쟁을 떠올린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9살 손주 온은 ‘전쟁’에 대해 상상하며 걱정한다. 작가들은 ‘전쟁은 나쁘다’ ‘평화가 좋다’는 이 당연하고 옳은 말을 따뜻한 이야기와 재치가 넘치는 그림으로 담았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이전 세대(할머니)의 기억으로만 다루지 않고, 온을 통해 현재 우리의 문제로, 전쟁의 위험성을 돌아보게 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