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KTX 숨은 이야기/ 강기동 외 공저/ 북갤러리/ 2만원
지난달 개관한 부산콘서트홀에선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 연주를 보기 위해 당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내려온 클래식 팬이 적잖았다. 2004년 4월 개통 이후 서울∼부산을 2시간 30분 거리로 좁힌 KTX가 아니었다면 힘든 일이다. 이처럼 국민 일상을 바꾸고 국토개발 역량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린 KTX를 땀과 열정으로 건설했던 철도인들이 기획·설계·시공·차량선정 및 후속 개발 등 그 과정과 시행착오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책은 당시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건설본부장 등 국내 철도산업 핵심인력으로서 현장에 참여했던 저자들이 각자의 경험을 기록으로 정리하자고 의기투합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업무일지처럼 투박한 대목도 있지만 현실성 ‘제로’였던 자기부상열차를 자체 개발해 건설하자는 당시 과학기술처 측 주장에 발목잡혔던 사연 등 다양한 현장 일화가 술술 읽힌다. 북한 관계자들이 대일 배상금으로 20억달러 정도를 받으면 철도망 구축에 쓸 수 있겠다는 기대로 KTX 건설 현장을 견학하러 왔다가 그 규모에 놀란 이야기도 있다.

한국 철도역사를 시계열 기법으로 정리하면서 집필진은 당시 우리나라가 고속철도를 건설할 만한 역량이 없었다는 고백부터 시작한다. 전 국민적 관심사였던 프랑스 알스톰과 독일 지멘스, 일본 미쓰비시 간 기종선정 협상에 관한 이야기, 고속철도건설사업 초기에 불어닥친 부실 공사논란의 실체와 문제점, 전문업체 WJE의 대대적 안전점검 과정이 생생히 전달된다. 치열한 입찰 수주전을 벌인 3사 개성을 회고한 대목도 흥미롭다. 일본은 익히 알려진 대로 정확한 의사전달을 추구하는 편이고 독일은 정직하다는 인식과 달리 물밑에서 파트너였던 대우중공업의 경쟁자였던 현대정공과도 소통하곤 했다. 프랑스는 열정적으로 협상에 임하면서도 때로는 기분파 성향답게 협상 결렬을 먼저 선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알스톰이 최종 협상 대상으로 결정됐는데 이후 한 번 더 협상이 이뤄졌다. 최종 결정권을 가진 청와대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가격을 좀 더 삭감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알스톰 회장은 즉시 5000만달러 삭감을 제안, 순조롭게 계약을 맺었다. 나중에 파악해 보니 알스톰은 해외에서 대형사업을 추진할 때 총 추진비의 3∼5% 정도 활동비를 산정하는데 이를 투입한 것이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프랑스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체화시키고 철도변방으로 여겨졌던 우리 기술로 시속 350㎞급의 차세대 차량을 개발하여 철도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된다.
집필진은 남북·시베리아와 연결하는 미래 철도 시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후대 철도인을 향한 제언으로 책을 끝맺었다. 현재의 설계속도와 열차 운행방식은 새로운 개념으로 정의되어 적용해야 하고 남북철도를 하나의 선로규격과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것을 전제로 건설규칙, 설계기준, 운전 및 신호방식 등에 대해서 새로운 규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상황이 어렵더라도 꾸준한 공론화를 통해 우리의 미래철도 노선을 미리 준비해서 미래에 대비하자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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