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자립 이뤄내 스마트폰 자체 개발
통신장비부문 점유율 글로벌 1위 사수
비상장·종업원지주제 등 베일 속 체제
창업기부터 최신 동향까지 생생 추적
화웨이 쇼크 - 그들은 어떻게 글로벌 1위가 되었는가/ 에바 더우/ 이경남 옮김/ 생각의힘/ 3만2000원
엔비디아는 연례보고서에서 5개 부문 중 4개 부문에 걸쳐 화웨이를 2년 연속 경쟁자로 지목했다. 통신 장비 세계 1위를 거머쥔 채,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1위 기업 엔비디아를 위협하는 화웨이는 중국 기술 굴기의 상징과도 같다. 미국 정부가 각종 제재로 고사시키려 했지만, 화웨이는 반도체와 5G 스마트폰을 생산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폴더블폰 분야에서도 세계 1위 삼성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화웨이는 이제 우리가 제대로 파악해야만 할 기업이 되었다.

화웨이는 중국 기업, 비상장회사, 종업원지주제도라는 특성상 베일에 싸여 있었다. 군 엔지니어 출신인 런정페이는 홍콩과 인접한 선전 경제특구에서 전화교환기 벤처 화웨이를 설립했다. 공산당의 지원과 직원들의 헌신, 중동·아프리카·유럽을 향한 공격적인 진출로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와 중동 분쟁 속에서도 성과를 일궈냈다. 통신 장비뿐 아니라 매니지드 서비스, 실시간 감시 시스템을 판매함으로써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고 5G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안주하지 않았다. 발 빠르게 칩 부문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설립해 스마트폰과 AI 칩에 도전, 딥시크를 구동하기에 이른다.
창업자 런정페이의 생애부터 창업 과정과 발전사, 최신 동향까지 ‘워싱턴 포스트’의 테크 전문기자 에바 더우가 심층 취재해 미스터리한 테크 제국 화웨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저자는 화웨이의 내부 자료를 입수하고 수많은 관계자를 인터뷰하며 이 비밀스러운 제국을 파헤친다. 화웨이를 둘러싼 주요 인물과 화웨이의 지배 구조, 사건 연표 등 폭넓은 정보를 600쪽 가까운 책에 실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때 화웨이를 ‘재앙’으로 규정하고 중국발 안보 위협을 제기한 바 있다. 이는 미·중 무역 전쟁과 외교 갈등, 기술 냉전을 고착화했다. 미국의 전면적인 반도체 수출 제재로 화웨이는 위기를 면치 못했지만 이내 기술 자립에 도전해 성과를 내고 반등에 성공했다. 자체 개발한 5G 스마트폰 ‘메이트 60’의 중국 내 판매가 호조를 보이며 성장 기회를 제공했다. 후속 시리즈 ‘메이트 70’까지 히트시킨 화웨이는 2024년 8621억위안(174조원)으로 전년 대비 22.4%의 매출 성장을 달성했다. 스마트폰 사업은 매출이 38%나 뛰어올랐고 클라우드 부문 또한 8.5% 증가했다. 연구개발 투자도 9.1% 늘어나 1797억위안(36조원)에 이르렀다.
화웨이는 글로벌 1위 점유율(31%)을 사수하고 있는 통신 장비 부문을 바탕으로 신사업에 도전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이는 곧장 성과로 나타났고 미국과 중국 간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요인이 됐다.
책은 미국의 갈등과 제재, 화웨이의 활로 모색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화웨이 미국 법인 대표 찰스 딩의 미 하원 청문회와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의 딸이자 현 순환 회장인 멍완저우의 캐나다 구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화웨이는 미국 하원 정보청문회의 집요한 추궁에도 백도어(정상적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컴퓨터와 암호 시스템 등에 접근하는 것),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멍완저우는 미국의 개입으로 캐나다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쇼핑과 외출을 자유로이 하며 구금 기간을 보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이 이에 맞서 캐나다인 둘을 억류하고 고문함으로써 소위 ‘인질 외교’가 벌어졌다. 멍완저우의 구금은 오히려 화웨이에 대한 애국 소비를 증가시켰다. 가족이 기업을 물려받지 않을 것이라는 런정페이의 말과는 달리 멍완저우가 순환 회장에 오르는 일화도 책은 상세히 기술한다. 미국과 관련한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하나는 미국이 어떻게 화웨이의 백도어를 확신했는가 하는 점이다. 바로 미국이 도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웨이는 2024년 연구개발비에 매출의 20%인 36조원을 쏟아부었다. 순이익이 전년 대비 28%나 감소했음에도 연구개발비는 9.1% 증액한 것이다. 화웨이가 얼마나 연구개발에 공을 들이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창업 초기 ‘매트리스 문화’를 만들며 밤낮없이 일하다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이던 R&D팀과 그를 격려하던 런정페이 회장의 이야기, R&D 센터인 둥관 옥스혼 캠퍼스의 장대한 전경 등은 한국 하이테크 산업이 갈 길을 안내하는 듯하다. 작은 전화교환기 회사에서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설립해 중국의 기술 자립 토대를 마련한 화웨이의 족적을 허투루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책은 화웨이의 공과를 가감 없이 들춰냄으로써 한 기업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자료로도 기능한다. 경쟁사 제품 베끼기, 과도한 접대와 개인 생활을 앗아가는 근무 환경 등은 중국 내 수많은 경쟁사를 도태시켰으며 직원들의 불행과도 직결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화웨이는 중국의 근무시간 단축 기조와 함께 곧바로 자정에 나섰으며 무엇보다 인재 영입을 우선시했다. 이는 이민자와 대학을 압박해 인재 유출을 유발하는 트럼프 정부와 대비된다.

화웨이는 홍콩에 AI를 담당하는 ‘노아의 방주 연구소’를 설립하고 파리, 모스크바, 몬트리올에 지사를 늘려 엔지니어뿐 아니라 수학자와 양자물리학자 등 세계 정상급 인재를 확보했다. 기술 플랫폼을 지향하면서도 늘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다. 5G에서 패권을 차지한 뒤, 기술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폴라코드의 아버지 에르달 아리칸 교수를 축하 행사에 초빙한 것만 보더라도 화웨이가 인재와 연구개발에 두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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