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살해’ 사건 이후 기준 마련
형량 상향 불구 집행유예 수두룩
재범발생·강력범죄 악화 우려 커
처벌불원 때만 벌금형 권고에도
102건, 24% 달해… 선고유예 4건
가해자 사실상 범죄라 인식 못해
구속영장 기각률 34%… 매년 늘어
대구 스토킹 살해 범인 구속 기소
2022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전주환(34)이 스토킹하던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 역무원을 살해한 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양형기준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스토킹 범죄에 부과된 형량은 벌금형이 많아 양형기준이 만들어지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세계일보가 8일 판결문 검색 서비스 엘박스(LBox)를 통해 스토킹 양형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한 지난해 7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6개월간 죄명이 스토킹처벌법 위반인 1심 재판 중 재발 우려가 있어 접근 금지 등 ‘잠정조치’ 명령을 받고도 이를 어긴 사건 판결문 420건을 살펴봤다. 그 결과 징역형과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가 절반(50%)이었다.

제9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3년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과 위험성’과 ‘사회적 관심도와 인식’ 등을 반영해 최초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세웠다. 지나치게 낮은 형량이 선고된다는 비판을 수용해 형량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양형위가 지난해 11월 펴낸 ‘2023 연간보고서’를 보면 잠정조치 위반처럼 스토킹 범죄 양형 시 가중인자가 있을 땐 처벌불원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벌금형을 선택하도록 권고된다. 재범 발생이나 강력 범죄로 악화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판결문 중 벌금형만 선고받은 경우는 103건(24.5%)으로 적잖았고 선고유예도 4건 있었다. 징역형 역시 집행유예가 47.4%에 달했다. 법원은 경찰의 신청을 받거나 직권으로 스토킹 범죄 중단에 관한 서면 경고와 주거지로부터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나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 잠정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평균 형량은 양형위가 권고한 형량 범위 내에 있긴 했지만, 중앙값엔 못 미쳤다. 양형위는 가중인자가 있는 일반 스토킹 범죄의 경우 징역 최소 10개월 최대 2년6개월을 선고하도록 했다. 중앙값은 약 1년8개월이다. 반면 전체 판결문에서 집행이 유예된 경우를 포함해 평균 징역 형량은 1년2개월 수준에 그쳤다.

스토킹 가해자들은 여전히 ‘스토킹’ 자체가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6층에 올라가 스토킹하던 여성을 살해한 뒤 나흘 만에 검거된 윤정우(48)는 경찰에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조사에선 피해자가 자신을 신고했다는 것에 분노해 보복했다고 했다. 윤씨는 3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률도 높은 편이었다. 대구 스토킹 살해 사건에서 피해자는 윤정우를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의 기각률은 평균 34%였다. 2022년 33%, 2023년 34%, 2024년 36%로 해마다 소폭 상승하는 추세다. 반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전체 범죄에 대한 평균 구속영장 기각률은 28%가량이었다. 지난해 수치를 단순 비교하면 8.4%포인트 차이가 난다.
스토킹 피해 상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발표한 지난해 ‘여성긴급전화1366’에 걸려 온 스토킹 피해 상담은 1만4553건으로 전년(9017건)보다 61%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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