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 선착장을 지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0여 분 달리자, 바다와 맞닿은 평원 한가운데 염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바둑판을 연상케 하는 정갈한 네모 칸마다 바닷물이 잔잔히 담겨 있고, 그 위로 햇살이 부서지듯 반짝였다. 사방은 고요했고, 고무장화를 신은 염부의 발자국 소리만이 고요를 깨우고 있었다.
전국 천일염의 85% 이상이 생산되는 전남 신안군의 중심 도초도. 물안개가 자욱이 깔린 아침, 염전마다 기계 대신 해와 바람, 그리고 사람에 의해 도초도의 하루가 열리고 있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빚어내는 이곳 천일염은 정제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14년 전, 도초도에 약초를 캐러 왔다가 눌러앉게 된 염부 전동길(61)씨는 이제 1만 평 규모의 염전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엔 하수오, 함초를 채취하며 살아가던 중,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염전을 넘겨받아 염부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손때 묻은 염전,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바다와 하늘은 이제 그의 삶이 되었다.
“염전 일이요? 해와 바람만 믿고 사는 일이죠. 조급한 사람은 못해요.” 그가 손으로 염전의 한 칸을 가리켰다. 손끝이 머문 바닥에는 눈송이처럼 흩뿌려진 하얀 소금 결정이 고르고 단단하게 맺혀 있었다. “이 결정 하나하나가 바닷물이 태양과 바람을 견디며 일곱 날 동안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흉내 낼 수 없는 시간이 만든 결과죠.”
염전은 크게 입수지, 증발지, 결정지로 나뉜다. 입수지는 바닷물을 들이는 구역, 증발지는 수분을 날려 농도를 높이는 곳, 결정지는 말 그대로 소금이 맺히는 마지막 단계다. 전씨는 새벽 조수 간만의 타이밍을 계산해 입수지로 바닷물을 끌어들인다. 이후 2~3일 동안 증발지에서 농도를 확인하며 결정 시점을 기다린다. 햇볕만으론 부족하다. 바람이 불어야 수분이 날아가고, 흐린 날 없이 맑은 날이 최소 나흘은 이어져야 질 좋은 소금이 얻어진다. 도초도 천일염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바닥 재질에 있다. 이곳의 염전은 대부분 ‘토판(土板)’ 방식으로 조성돼 있다. 콘크리트가 아닌 황토와 점토를 깔아 만든 바닥은 천연 필터 역할을 하며 소금 속에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풍부한 미네랄을 스며들게 한다. 이는 오랜 숙성을 필요로 하는 전통 발효식품에 탁월한 궁합을 보인다.
“정제염은 99%가 염화나트륨이지만, 도초도 소금은 미네랄 덩어리라니까요.” 그가 자랑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간장 담그는 집에서는 이 소금 말고는 못 써요. 맛이 달라요.”
오전 염전 일을 마치고 나면 그는 ‘용항정’이라 불리는 도초도의 국궁장으로 향한다. 섬에 정착하고 난 후 새롭게 얻은 취미다. “처음에는 마을 형님들 따라다니다가 활 쏘는 걸 배우게 됐어요. 지금은 대회도 나가고, 형님들이랑 점심도 같이 먹고 그래요. 진짜 이 섬 주민이 된 기분이랄까.”
그는 염전 한가운데에 서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다 말했다. “내가 죽어도 이 염전은 그대로일 거요. 바람 불고 해가 뜨면 소금은 또 만들어질 테니.”
바람과 해, 그리고 사람의 손이 어우러져 만든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섬과 사람, 자연과 시간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느리지만 견고한 생의 결정이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휴대폰 개통 안면인증](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24/128/20251224514544.jpg
)
![[세계포럼] 금융지주 ‘깜깜이’ 연임 해소하려면](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24/128/20251224514519.jpg
)
![[세계타워] 속도 전쟁의 시대, 한국만 시계를 본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24/128/20251224514427.jpg
)
![[한국에살며] ‘지도원’ 없이 살아가는 중국인 유학생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2/24/128/20251224514493.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