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경계를 허물면 관계가 보인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관련이슈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입력 : 2025-07-08 06:00:00 수정 : 2025-07-07 20:58:31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현모의 파편들로 바라본 ‘침윤의 미학’

인공은 종종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자연의 대립항 아닌 연장으로 재해석
흙에서 나온 점토 구우면 도자기 되듯
인간의 손 거치더라도 지구에서 유래
오로지 함께 있다는 감각만 스며들어
결국 경계 자체가 환영이었다고 말해

파랗게 웅크린 덩어리. 기포와 요철로 얼룩진 표면이 광산에서 갓 채굴된 터키석처럼 거칠게 빛난다. 질척하게 눌려 압축된 부피는 마치 거대한 풍선껌이나 뭉개진 밀랍 덩어리 같기도 하다. 인공이라 부르기엔 광물 같고, 광물이라 단정 짓기엔 조형적이다. 상반된 두 형질의 사이에서, 이 파란 몸체는 그저 존재하는 중이다.

◆호기심의 방

구현모(51) 작가의 개인전 ‘Echoes from the Cabinet(캐비닛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이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19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자연과 인공, 물질과 비물질, 실재와 허상 사이를 오가는 존재론적 작업을 전개해 왔다. 이전 전시에서 자연을 모방한 인공물을 통해 ‘후천적 자연’을 제시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 구분이 무화된 ‘캐비닛’을 펼쳐 놓는다.

‘Echoes from the Cabinet Cabinet’(캐비닛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전시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전시의 구조는 16세기 유럽 ‘호기심의 방(분더카머)’을 연상시킨다. 자연사적 수집품과 고대 유물, 진귀한 예술품이 섞여 있던 그 방처럼 구현모의 공간 역시 인공과 자연, 사실과 환영의 경계가 흐려진 혼종의 장이다. 돌을 닮은 도자, 황동으로 빚은 나뭇가지, 바닥에서 솟아오른 이름 모를 구조물에는 익숙함과 생경함이 나란히 들어차 있다. 자연을 닮은 사물들은 그것이 인공물임이 발각되는 순간 감각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인공은 종종 자연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여겨져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작가는 그 둘의 대립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인공물’을 자연의 대립항이 아닌 자연의 연장 혹은 잔여물로 제시한다. 이는 물성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현된다. 구현모의 재료들은 비록 인간의 손을 거쳤을지라도, 그 기원은 여전히 지구의 몸으로부터 유래한다. 예컨대 금속은 광물에서 추출되고, 점토는 흙에서 나와 불을 만나 도자가 된다. 작가는 이처럼 자연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의 흔적을 되새긴다. 마치 ‘경계’가 원래부터 허구였다는 듯, 분리된 세계를 이어 붙이려 하기보다 그것을 실체화하지 않고 소멸시켜 버린다.

◆사건과 감염으로서의 전시

자연과 인공의 구분을 무화하는 시도는 자칫 인간 중심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지만, 구현모는 이와 다른 길을 택한다. 그는 경계 짓는 주체가 누구인지 질문함으로써 모든 것이 생태적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환기한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작가는 명확한 해석을 제시하기보다, 관객이 공간, 시간, 사물과 함께 감응하며 의미를 생성해 내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전시는 지각과 관계가 형성되는 하나의 ‘사건’에 가깝다. 작품들은 장소를 점유하는 대신 그곳에 스며들어 버리며, 자기를 주장하기보다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자신을 분해시키는 방식으로 생동한다. 형태는 있지만 경계는 없는 이 공간에서, 관객은 그 흐름에 감염되어 함께 녹아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구현모의 조각이 주로 물성을 통해 언캐니(uncanny)를 촉각적으로 전했다면, 평면 작업들은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응시하며 그 실체를 화면 위에 위태롭게 드리운다. ‘building(빌딩)’이라는 제목의 연필 드로잉에는 두 개의 구조물이 나란히 등장한다. 어느 쪽이 자연물이고 인공물인지, 혹은 이들이 전적으로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래로 이어지는 두 점의 드로잉도 이러한 모호함을 증폭시키는데, 마지막 ‘rebuild(리빌드)’에서는 어딘가 비어 있는 부분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틈을 채울 주체가 인간의 개입인지 자연적 현상인지 분명하지 않다. 애초에 그러한 분별이 필요한지, 채워져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질문만이 남아 있다.

◆부유하는 인간

모더니즘이 세계를 잘게 나누고 사물과 감각을 구획하려 했다면, 구현모는 그 경계 자체가 환영이었다고 말한다. 조각난 세계의 파편들은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들어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새로운 생태적 감각을 구축한다. 그 안에서 인간 또한 하나의 유동하는 존재로 해체되며, 새로운 인식의 틀 안에서 재조합되는 거대한 흐름 속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일종의 ‘분리 불가능성의 미학’이다. 여기에는 인간 중심적 우월성에 근거한 배려도, 연민도, 정념도 없다. 오로지 함께 있다는 감각만이 균열의 선을 따라 스며들고 있을 뿐이다.

관객은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tree in the air(허공의 나무)’와 바닥에서 솟아오른 ‘forest Island(숲 섬)’ 사이 어딘가, 경계가 무너진 중간 지점에 위치하게 된다. 한 방향으로 솟구치다 이내 곤두박질치고, 어디로 뻗어나갈지 예측할 수 없는 유기적 선들이 관객의 시선을 혼란스럽게 하며 방향 상실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닥에 발을 딛고 있지만, 사실 부유하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을 감각하는 관객일지도 모른다.

‘rock on the wall’(벽에 걸린 돌, 31x34x20cm, 도자).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전시장 안쪽에 자리한 ‘pentagon(펜타곤)’은 구현모가 제시하는 새로운 존재론적 관점을 캐비닛 너머로 확장한다. 황동과 나무로 이루어진 오각형 프레임 사이로 관객은 깊고 푸른 여름의 나무들과 건물로 이루어진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 틈은 단순한 창이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구분 너머를 사유하게 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이곳에서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는 새로운 차원에서 재고된다. 비인간적 존재 위에 군림하던 인간은 더 이상 무언가를 감상하거나 보존하는 주체가 아니며, 인간의 반대편에 놓여 있던 자연은 우주적 흐름으로서의 자연으로 확장되며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낸다.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이러한 붕괴와 확장의 감각 속에서 새로운 윤리의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말하는 ‘윤리’란 도덕적 규범이 아닌,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를 인식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사유이다. 경계는 사라지고 오직 관계만이 남아있는 지점에서 구현모는 ‘침윤’의 윤리를 택한다. 그리고 그 의미를 정의하는 대신, 천천히 스며드는 내밀한 감각을 경험하게 하며 소멸과 파괴가 불러일으키는 해방감을 전한다.

구축이자 해체이며, 창조이자 소멸인 구현모의 캐비닛은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새로운 윤리와 지각의 씨앗이 피어나는, ‘호기심의 방’으로 열려 있다. 물질과 이미지를 경유해 드러나는 존재의 심연은 그 호기심에 응답하며,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침묵 속에 머문다. ‘너’와 ‘나’, ‘그것’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무화되는 순간, 비로소 발생하는 어떤 존재론적 사건.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캐비닛 속 파편들이 위태롭게 하늘거리며 메아리친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김민 ‘매력적인 미소’
  • 김민 ‘매력적인 미소’
  • 아린 '상큼 발랄'
  • 강한나 '깜찍한 볼하트'
  • 지수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