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당·정 협의를 통해 이른바 ‘농업 4법’ 개정 추진에 합의했다. 유임된 송 장관은 이 자리에서 과거 스스로 ‘농망법’이라고 지칭한 농업 4법에 대해 “새 정부 국정철학에 맞게” 개선하여 모두 6개의 법안으로 확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에서 두 차례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농업 4법은 양곡관리법과 농·수산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농·어업 재해 보험법, 농어업 재해 대책법을 가리킨다. 특히 양곡법과 농안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는 대립을 지속해왔다.
이 가운데 양곡관리법의 개정 추진 배경은 식생활과 생활환경 변화에 따른 쌀 소비 하락에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1인 가구 증가 및 식생활의 서구화, 다이어트를 비롯한 식습관의 건강 인식 강화 등의 이유로 우리 식탁에서 쌀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2024년 1인당 소비량은 55.8㎏(통계청 2024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3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하락한 수치다.
쌀 소비량의 급감과 공급 과잉은 고물가 시대임에도 ‘쌀값 하락’이라는 이례적 현상을 초래했다. 특히 지난해 8월 산지 쌀값은 한 가마에 17만원대로 떨어져 1977년 통계조사 후 전년 동기 대비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쌀값이 곧 소득인 농민에게 이러한 가격 불안정이 닥치면서 농업과 농촌경제 전반을 위축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당이 꺼내 든 카드가 바로 농업 4법 개정이다.
양곡법 개정안의 핵심은 쌀 과잉 생산 시 정부의 매입이다. 쌀값 안정을 위해 필요하면 정부의 미곡 매입을 ‘권고’하는 내용의 기존 법안에서 ‘의무 매입’을 하도록 구속력을 적용했다.
농안법 개정안의 핵심은 농수산물의 가격 하락 시 차액 보전에 있다. 가격안정제를 도입해 기준선 이하로 가격이 하락하면 그 차액의 일정 비율을 정부가 보전해 주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쌀 중심의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물 재배를 권고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는데, 논을 활용한 밀·콩 등 다른 작물 재배를 유도하고, 재배 면적의 체계적 관리와 재정 지원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개정안이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권한대행 시절 두 차례나 거부권이 행사된 만큼 반대 의견 역시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막대한 정부 재정 투입 대비 실효성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쌀을 무조건 매입한다’는 정책이 농민에게 벼 재배를 자제할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 채 오히려 과잉 생산을 부추기며, 이는 다시 정부 재정 부담을 가중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에는 약 64만t의 쌀이 과잉 생산될 것으로 전망되며, 양곡법이 개정된다면 연평균 약 1조4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무엇보다 특정 농수산 품목 지원은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농안법 개정에 따라 가격안정제 적용 품목에 생산이 편중되면, 해당 작물의 공급 과잉으로 이어져 가격 하락을 유발할 수 있어서다. 특히 농산물은 가격의 신축성이 커 생산량의 소폭 증가만으로도 가격이 급격히 변동된다.
다른 농업 분야와 농산물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쌀에만 집중된 지원책은 밀, 콩, 보리 등 다른 작물 농가와의 수혜 불균형이라는 논란을 초래할 수 있고, 전체 농업정책의 균형성을 저해할 수 있는 탓이다. 몇몇 품목에 집중된 재정 지원은 청년농·스마트팜 등을 대상으로 한 미래 투자 확대를 어렵게 하여 장기적인 농업 발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당정 협의에서는 이처럼 상반된 주장을 조율하기 위한 절충안이 논의됐으며, 송 장관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정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먼저 양곡법과 관련해서는 생산량을 사전 조절하기 위한 인센티브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전 개정안이 남은 농산물을 처분하는 ‘사후적 조치’였다면, 송 장관이 이번에 새롭게 제시된 방안은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방지하는 ‘사전적 수급 관리’를 강화했다. 논란이 되었던 의무 매입 조항도 이러한 사전 수급 조절 조치에도 불안이 발생하면 ‘조건부’로 과잉 물량을 매입하고 가격 하락분을 지원하는 방침으로 수정된다고 한다.
농안법은 기존 개정안에 제시되었던 가격안정제 대상을 현재 수입안정 보험이 적용 중인 마늘과 양파, 배추, 포도, 콩 등 15개 품목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국회 농식품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이원택 의원은 이들 15개 가운데에서도 수급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된 품목부터 우선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농가 소득 안정은 정부마다 주요 국정과제로 삼아 논의를 이어왔다. 그런 가운데 기후 변화와 국제 분쟁 등 복합적인 외부 요인으로 불안정해진 식량 안보에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쌀을 뺀 주요 곡물의 자급률이 매우 낮아 밀과 옥수수는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살펴 미래 농정은 쌀에 편중된 생산 구조를 탈피하고, 자급률이 저조한 타작물 재배로 실질적인 전환을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단편적인 재정 지원 이상으로 전환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정교한 유인체계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특히 토양과 수자원 등 재배지의 환경조건을 반영한 맞춤형 지원, 관개·배수 등 농업 기반 시설의 현대화가 필수적이다.
쌀 소비가 줄어들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주식이며, 이를 지탱하는 농업은 우리 사회의 뿌리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 농정에는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농촌사회의 존속, 기후 위기 대응, 식량 주권 등 국가 주요과제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 깔려있어야 할 것이다.
농업정책은 단기적인 시장 안정을 넘어 구조의 다변화, 미래 인프라의 체계적 구축,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하고 종합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청년농과 스마트팜 등 미래 농업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주거·교통·의료 등 농촌생활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정주 여건 개선도 매우 중요하다.
근시안적인 처방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 환경, 기술, 사람과 땅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농정의 ‘언어’로 미래 지향적인 농업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이상아 UN SDGs 협회 연구원 unsdgs.sanga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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