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 권력·정치 부조리 꼬집어
지금의 인천 어디쯤일 조선시대 농머리 고을. 폭풍에 휘말려 오빠 미언과 헤어진 신애는 남장을 하고 ‘만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양반 오사룡의 시종이 된 만득은 주인이 사랑하는 서린 아씨에게 연서를 전하다가 충청도 사투리 “∼데이”에 반한 서린의 사랑을 받게 된다. 마침 살아남은 오빠 미언이 마을에 나타나면서 만득과 미언을 혼동한 이들 사이에 오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극찬을 받은 ‘보이첵’, 코로나 시대를 가로지르며 매진 행진을 기록한 ‘스카팽’을 연출한 임도완이 이번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국립극단 무대(6.12~7.6)에 올렸다. “원작 그대로 올리기보다는 우리만의 색을 입혔다”며 임도완은 원작에선 인간 군상의 어리석음을 겨냥했던 풍자의 화살을 ‘무능한 권력자’와 ‘부조리한 정치 현실’쪽으로 돌렸다. 광대 역할을 하는 ‘북쇠’ 입을 빌려 “똑똑한 바보는 멍청한 위정자보다 백배 낫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임도완은 영어에서나 가능한 언어유희에 의존하는 원작 해학을 한국 현실에 맞게 재설계했다. 배우들 신체를 통해 서사의 밑그림을 그리고 계산된 동작과 맛깔나는 대사와 리듬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신체극의 대가 임도완이 그린 설계대로 배우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는 생생하고 연기의 합(合)은 치밀하다. 배우들 몸짓과 대사, 음악과 장단이 하나로 엮이며 극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리듬으로 객석에 웃음을 선사했다. 주·조연을 나누기 어려울 만큼 모든 배우가 시원한 대사와 정교한 신체 연기로 고르게 무대에서 빛났다.
특히 임도완 연출 작품에서 오랜 동안 활약해온 배우 성원은 ‘마름’ 역을 맡아 신체극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줬다. 위선과 권위의 상징에서 희극적 추락까지 한 인물의 변곡선을 신체로 완성해냈다.
배우들의 충실한 연기와 극·연출의 창조적 상상력이 촘촘하게 짜이면서 ‘십이야’는 국립극단의 새로운 인기 레퍼토리 자격을 획득했다. 올 상반기 다양한 형식으로 관객을 만난 셰익스피어 작품 중 출중한 작품을 고르자면 국립극단의 ‘십이야’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