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목적’ 우기려고 기상천외 편법 동원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정상회의를 열고 회원국들의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 동맹국들에게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려 들지 말고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5% 이상 금액을 방위 예산으로 지출하라”고 압박을 가한 데 따른 것이다. 스페인을 제외한 모든 회원국이 ‘GDP 대비 5%’ 기준을 수용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니 이게 국방비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항목이 많아 향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나토의 방위비 지출 인상 요구에 대처하는 로마 정부의 방법’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6월 24, 25일 이틀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국방비를 오는 2035년까지 10년간 GDP 대비 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이탈리아의 방위 예산이 2024년 기준 GDP의 1.5%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증액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로이터의 취재 결과 이탈리아가 앞으로 늘릴 국방비라며 제시한 항목 다수가 얼핏 봐도 국방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아 섬을 연결하는 초대형 다리 건설을 비롯해 항구, 조선소, 철도, 자동차 도로 등을 정비하거나 새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까지 몽땅 방위 예산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는 애초 나토가 GDP 대비 5%라는 수치를 회원권들에게 제시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국민을 위한 복지·교육 예산이 중요한데 어떻게 국방비만 늘릴 수 있느냐”는 동맹국들의 원성이 빗발치자 나토는 이른바 ‘3.5% +(플러스) 1.5%’라는 기발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장병 급여, 무기 구입비 등 순전히 국방과 직결된 비용은 3.5%로 하고 나머지 1.5%는 군사와 관련된 각종 인프라 비용으로 해서 5% 기준에 맞추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인프라 건설 비용까지 넓은 의미의 방위 예산으로 간주하자는 것인데, 여기에는 유사시 군사 작전에 활용될 수 있는 교량·도로·철도 건설 등도 포함된다.

이탈리아 정부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계획한 인프라 투자의 상당 부분은 군사용과 민간용 이중 용도이기 때문에 나토의 기준을 충족시킨다”며 “해군 군함의 건조·수리·유지·보수와 지상군 병력 및 군사 장비의 수송에는 충분한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토 그리고 유럽연합(EU) 일각에선 나토 정상회의 때 GDP 대비 5% 기준을 관철시킨 뒤 만족스러움을 표시하며 미국으로 돌아간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실태를 알면 어떻게 나올지 우려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기념 연설에서 “우리는 무역에서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사기를 당해 왔고, 나토에도 사기를 당했다”며 “그 어떤 나라보다도 심하게 뜯겼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기’라는 표현을 두고 외신들은 “국방비를 더 지출하지 않으려는 나토 동맹국에 대한 비판”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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