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 5000원→이마트·홈플러스, 3000원대
고물가에 소비자 100여명 몰려…“수량 부족” 불만도
“매장 고전에 할인마케팅 부활…매출 상승효과” 분석
“치킨 한 마리 3만원 시대인데, 3000원대 파격 세일은 흔치 않죠. 일찍 와도 구하지 못해서 아쉽긴 해요.”
지난 4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이마트. 개점 시간인 오전 10시 전부터 긴 대기줄이 이어져 매장 밖까지 100명 이상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9시 전에 왔다는 이들도 있었다. 정각이 되자마자 손님들은 치킨 코너로 곧장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줄로 서달라”는 직원의 외침 후 1분도 채 되지 않아 품절 안내문이 붙었다. 선착순 안에 들지 못한 손님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고, 몇몇은 다시 줄을 서기도 했다.

대형마트들이 ‘초저가 치킨’으로 맞붙었다. 2010년 격돌 이후 15년 만이다. 고물가에 침체된 소비시장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급성장한 이커머스 등으로 타격을 입자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최근 꾸준한 가격 인상으로 논란이 된 서민 대표 외식 메뉴 ‘치킨’을 상징적으로 택해 고객 잡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치킨 전쟁’의 선공은 ‘통큰 세일’을 진행한 롯데마트다. 롯데마트는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2일까지 ‘통큰치킨’을 5000원에 판매했다. 2010년 첫 출시 당시 대란을 불러일으켰던 통큰치킨과 동일한 가격에 내놓자 세일 기간 오픈런이 이어졌다. 할인이 끝난 이후에도 5000원 치킨을 찾는 소비자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

통큰치킨 크기는 국내산 냉장계육 10호를 사용한다.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사용하는 계육과 동일하다. 최근 치킨 가격이 배달료를 포함해 3만원을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6분의 1에 불과하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1주차 행사 때 준비한 물량 10만 마리가 매일 오전 완판됐다. 일주일간 롯데마트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며 “오픈 전부터 계속 닭을 튀겼지만, 오픈런한 고객들이 많아 번호표를 나눠주고 시간별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운영했다”고 전했다.
홈플러스도 메가 히트 상품 ‘당당치킨’을 내세워 참전했다. 지난 3일부터 오는 6일까지 ‘크레이지 4일 특가’ 행사를 통해 ‘당당치킨 옛날통닭’을 3990원에 내놨다. 마지막으로 동참한 이마트는 3사 중 가장 낮은 가격대의 치킨을 들고나왔다. 하루 먼저 할인을 시작한 홈플러스보다 치킨 가격을 510원 더 낮췄다. 오는 6일까지 ‘고래잇 페스타 쿨 썸머’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이마트는 ‘어메이징 완벽치킨’을 3480원에 판매한다. 당초 이마트는 정가 6480원인 이 제품을 행사 기간 중 4880원에 판매하려고 했으나, 치킨 경쟁이 격화되자 최종적으로 가격을 더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소비자들 반응은 뜨겁다. 전날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홈플러스에서 만난 주부 김신영(48)씨는 “2~3시간 마다 치킨 나오는 시간이 있는데 수량이 얼마 되지 않아 경쟁이 치열하다”며 “할인 첫날에는 모르고 그냥 왔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는데 오늘은 성공했다”고 말했다. 마트 직원을 향해 “수량 좀 늘려달라”며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프라인 체류 시간을 늘려 다른 상품 구매를 유인하고자 한 마트들 전략은 먹혀들었다. 실제 치킨을 사지 못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는 신선식품 등 다른 물건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주부 심경인(61)씨는 “하루에 20마리도 안 파는 건 너무한 것 같다”며 “온 김에 다른 식료품 장이라도 봤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장기화된 고물가로 고전 중인 오프라인 매장을 살리기 위해 할인 마케팅이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가 안정을 내세우는 현재 정부 기조와 함께 가려는 의지로도 읽힌다”며 “대표 제품을 큰 폭으로 할인하면 다른 제품들 할인율이 낮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체감 할인율은 크게 다가온다. 치킨 제품은 마진이 남지 않겠지만, 고객을 끌어모아 전체 매출을 늘리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의 초저가 할인 비결은 대량 매입에 있다. 치킨의 경우 대량의 원육을 선계약해 원가 비용을 낮춘다. 치킨 프랜차이즈와 달리 광고나 매장 운영비 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요인 중 하나다. 15년 전 대형마트의 첫 번째 경쟁 당시 영세 치킨집을 어렵게 만든다는 반발도 나왔는데, 이번에도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한시적으로 진행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식품 물가가 줄인상하면서 지갑이 더 꽉 닫히는 상황이 됐다”며 “대형마트들이 본격 하반기 여름 세일 기간에 맞춰 과거 매출 증가 성공 전략을 다시 들고나온 셈이다. 추후에도 유사한 세일 경쟁이 펼쳐져 물가 안정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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