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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운전자 치매검사 90% 무사 통과… “면허갱신제 내실화 시급” [심층기획-시청역 차량 돌진 사고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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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01 06:00:00 수정 : 2025-07-01 11: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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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센터 ‘인지검사’ 10분 만에 종료
문장 따라 말한 뒤 기억 확인하거나
그림 보여주고 단어 맞히는 게 전부

공단서 운전 능력 평가 교육 받지만
검사항목 5등급 나와도 연장 無제한
“고령 운전자 변별·평가 검사제 전무”

시청역 참사에도 갱신 문제 ‘제자리’
서울시는 면허 반납자 지원금 상향
“국가가 적절한 평가 방법 찾아내야”

지난해 7월 서울 한복판에서 고령 운전자의 역주행으로 보행자 9명이 숨진 ‘시청역 차량 돌진 참사’가 1주기를 맞았다. 참사 발생 1년 새 고령 운전자에 의한 유사한 사고가 잇따르면서 면허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문화된 면허갱신절차로 사고 위험성이 높은 운전자를 방치하면서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평가다.

2024년 7월 2일 오전 전날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완전히 파괴된 차량 한 대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문화된 면허 갱신

30일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75세 이상 운전자는 3년마다 운전면허증을 갱신해야 한다. 75세 미만은 10년마다 갱신해야 하는데 형식적 절차에 그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갱신은 자가신고서를 작성한 뒤 2년 이내의 건강검진 자료를 제출하는데, 시청역 참사에서처럼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오인해 밟는 등의 사례를 막을 만한 장치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75세 이상 운전자는 전국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 10∼15분 정도 소요되는 인지선별검사(CIST)를 받은 뒤,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온라인 교통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시청역 참사에서 가해차량 운전자였던 차모씨는 사고 당시 68세로 CIST 검사 대상이 아니었다.

CIST 검사가 사실상 면허 갱신 여부를 가르는데, 합격률이 90%를 넘는 점도 실효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전국 치매안심센터에서 진행하는 CIST 검사지는 총점 30점으로 구성돼 있다. 검사 내용은 ‘오늘 날짜를 말씀해 주세요’라는 간단한 질문부터 ‘민수는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서 11시부터 야구를 했다’라는 문장을 따라서 말하고, 몇분 뒤에 기억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칫솔이나 그네 등 그림을 보여주고 단어를 맞히도록 하거나, 가능한 많은 과일의 이름을 말하라는 식의 문항 13개가 전부다.

이일근 대한신경과학회 홍보이사는 “인지검사는 목적이 치매 진단이기 때문에 운전능력을 평가하는 건 당연히 어렵다”며 “인지기능과 운전능력 간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고령자 운전 문제를 의사와 민간단체에 내맡긴 것”이라며 “운전능력을 평가하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IST 검사를 통과한 뒤에 받는 공단 교육에는 운전능력을 묻는 문항들이 있지만, 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수만 하면 통과된다.

‘인지능력 자가진단검사’는 운전표지판 두 개를 제시한 뒤 여러 표지판 중에서 기억나는 것을 맞히라거나, 움직이는 자동차 그림 위에 쓰여 있는 숫자를 기억하는지 묻는 등의 컴퓨터 기반 검사다. 공간기억이나 동체 추적, 집중력 등을 평가하기 위한 문항이다. 자가진단검사 5개 항목 중 하나라도 5등급을 받으면 종합 결과가 5등급으로 매겨지지만, 이 결과를 가지고 면허 갱신에 제한을 둘 수는 없다. 공단 관계자는 “인지능력 검사는 평가가 아니라 자가진단”이라면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느껴보고 전문 교수진의 강의를 듣고 운전 시 주의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3년마다 치르는 면허갱신절차에서 고령 운전자의 사고 가능성을 차단하지 못하면서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은 2019년 ‘운전자 연령에 따른 운전능력 분석’에서 “국내에서 운전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 및 지각, 시력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도구의 개발 및 보편화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2024년 7월 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 대형 교통사고 현장에서 과학수사대가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미경 도로교통공단 선임연구원은 국책연구과제를 통해 개발한 고령 운전자 운전능력 평가시스템(S-DAS)을 소개하면서 “일반운전자와 고령 운전자 간 운전능력을 측정할 때 유의미한 결과의 차이가 나타났다”며 “표준화 실험을 통해 타당도와 신뢰도가 검증된 시스템이 고령운전자 변별을 위한 정밀검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공단 관계자는 “현행 검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연구가 진행됐을 수 있지만, 고령 운전자를 변별하거나 평가하기 위한 검사제도는 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사 뒤에도 ‘제자리’

참사가 발생하고 1년이 지났지만 사고는 여전히 빗발치고 있다. 시청역 참사의 가해차량 운전자인 차씨는 지난 2월 1심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등 혐의로 금고 7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으로 사고가 발생했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항소했다. 차씨는 지난 4월30일 공판에서도 급발진을 주장했다. 일각에선 차량 급발진이 일부 운전자의 변명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 12일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식당 앞에서 80대 운전자의 차량이 돌진해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등 4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사한 사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시청역 참사 1년이 지나도록 면허갱신체계의 개선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국토부는 시청역 사고 이후 일부 고령 사업자 운전자 면허갱신요건을 강화했지만 전체 고령 운전자에 대한 대책은 아직 없다. 한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지난해 사고 이후 서울시 차원에서 대책이 마련됐고, 국토부나 행안부에서는 고령 운전자나 급발진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2024년 7월 4일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사고 현장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서울시가 면허를 자진 반납한 70세 이상의 운전자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을 기존의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정부는 조건부 운전면허제 도입, 면허 적성검사 강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제도화 등 제도적·기술적 개선을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


소진영·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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