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체제에선 공개 대신 여론 통제
국제 사회 금기어는 ‘최종 해결’, 사용시 뭇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 작전명은 ‘한밤의 망치’(Midnight Hammer, 미드나잇 해머)였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공습 다음 날인 22일 “어젯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중앙사령부에서 ‘미드나잇 해머’ 작전을 수행했다”며 “이란의 포르도∙나탄즈∙이스파란에 위치한 핵시설 3곳을 대상으로 심야에 정밀 타격했다”고 밝혔다.
작전명 ‘한밤의 망치’는 은밀한 기습과 강력한 파괴력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다.

앞서 이란을 먼저 때린 이스라엘의 작전명은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 라이징 라이언)였다. 위기 상황에서 민족적 자존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는 것이다. ‘사자’의 역사적∙신화적 의미는 ‘용기’, ‘민족 정체성’을 의미한다.
반면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특수 군사작전’이라고 표현했을 뿐 지금까지도 작전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각국이 붙이는 작전명에는 군사적∙정치적∙외교적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자유주의 진영은 대부분 공개하는 반면 권위주의 진영은 비밀에 부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 전투, 작전명과 의미는
20세기 이후 자유주의 진영의 공습 대부분은 작전명이 공개됐다. 작전명을 붙이는 이유는 군 내부의 명확한 지시와 통제를 위해서지만 정치적∙심리적 효과를 노리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 있다. 국민 여론 결집, 명분 강화, 공습 대상의 사기 저하 등을 위해 공개하곤 한다.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작전명은 ‘지배자’(Overlord, 오버로드)였다. 나치 독일의 유럽 지배에 맞서 연합군이 전세를 뒤집고 유럽을 해방시키는 결정적 작전을 수행한다는 의미였다. 군인들에게 사명감과 위엄을 불어넣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맞서 미 연합군이 참전한 걸프전의 작전명은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데저트 스톰)이었다. 중동에 폭풍처럼 강력한 공격을 가해 제압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이라크에는 공포감을 주고 미국인에게는 ‘정의의 응징’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작명이었다.
2011년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의 이름은 ‘바다 신의 창’(Neptune Spear, 넵툰 스피어)였다. 넵툰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과 동일 인물이다. 신화적 존재가 창을 휘둘러 적을 제거한다는 것으로, 9∙11 테러의 상징적 인물에 복수를 가하는 서사를 담았다.
모두 공습 명분을 강화하고 국내외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고도의 심리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력을 강조할 때는 ‘천둥(Thunder)’, ‘폭풍(Storm)’, ‘망치(Hammer)’, ‘분노(Fury)’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방어적 성격을 강조할 때는 ‘방패(Shield)’, ‘전선(Edge)’, ‘수호자(Guardian)’, ‘돔(Dome)’ 등을 붙였다.

◆북∙중∙러는 철저히 은폐
그러나 러시아, 중국, 북한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은 작전명을 공개한 사례가 거의 없다. 특히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체제 이후 작전명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나중에라도 작전명을 공개하지만,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권위주의 국가에선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작전명을 공개하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존재하지 않았던 작전’으로 은폐할 여지도 있다.

권위주의 체제는 작전이 실패하거나 민간이 피해가 드러날 경우 정권에 불리할 수 있기에 아예 기록 자체를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북한만 해도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작전을 수행하면서 한 번도 구체적인 이름을 공개한 적이 없다. 대신 ‘핵 무력 완성 대장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 중국도 대외적으로 언급할 때 작전명 대신 ‘대만 독립 응징’, ‘일국양제 수호’ 등 구호를 사용한다.

◆국제 사회의 절대 금기어 ‘최종 해결’
전 세계적으로, 특히 영미권에서 작전명에 절대 사용하지 않는 금기어는 ‘최종 해결(Final Solution)’이다. 이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과 직결된 표현으로, 정치인이나 공인이 실수로 이 단어를 언급할 경우 곧바로 사과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어다.
2003년 미 국방부는 이라크 관련 작전명 후보로 ‘마지막 움직임(Final Move)’, ‘완전한 해결(Total Solution)’ 등을 검토하다가 최종 해결(Final Solution)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나치 독일은 1941년부터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해당 계획에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이란 이름을 붙였다. 현재 독일에서는 이 단어를 공식 연설이나 정책, 군사작전에서 사용하는 걸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자유주의 진영에선 직접적으로 대상을 언급하거나 정치적인 논란을 부를 단어는 피하고 있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수행하면서 해당 인물이 연상되는 단어를 작전명에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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