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1곳이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합리적 가격과 품질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대형 할인점이자 유통 기업으로 자리 잡았던 ‘서민 경제의 상징’ 홈플러스(위 사진 로고)의 법정관리 신청이었다.
불과 4일 전인 2월28일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신청 당일 법원은 이례적으로 11시간 만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속하게 결정했다. 그 후 국회 정무위원회 등에서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강등을 미리 알고도 법정관리를 준비했다”는 의혹과 함께 회생절차 신청의 이례적 신속성과 미흡한 투명성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앞서 홈플러스의 대주주로 아시아 최대의 사모펀드(PEF) 운용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MBK 측은 신용평가 등급이 예상과 달리 하락해 단기 유동성 악화를 막고자 선제적으로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고 주장했었다. 자본시장 안팎에선 MBK를 ‘악질적인 사모펀드’로 규정하고,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금융감독원은 3월19일 ‘홈플러스 사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켜 회생절차 신청 과정의 적법성과 시기, 사전 준비 여부에 대한 집중 조사를 시작했는데, MBK 산하 투자자문사 검사에 착수하는 한편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들을 상대로 조직도, 내부통제 자료 등을 요구하며 전방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 회생절차 신청 준비를 시작했는지, 필요성 판단 시점이 언제인지가 핵심”이라며 “홈플러스와 MBK의 사기성 단기채권 발행 혐의까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었다.
금융위원회 역시 3월14일 관계기관 점검회의를 열고, 협력업체에 대한 금융 지원, 대금지급 동향을 점검했다. 더불어 홈플러스의 기업어음(CP)·단기채 발행 등을 둘러싼 위법 소지 발견 시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많은 전문가는 이른바 ‘홈플러스 사태’의 핵심은 MBK의 무책임한 인수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인수하면서 4조원 이상을 대출로 조달, 과도한 차입구조를 자초했다. 이후 4조원대 부동산과 핵심 점포를 매각해 단기간 현금 회수에 치중했고, 점포 매각·폐점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홈플러스의 장기 경쟁력 저하를 불렀다. 홈플러스의 실적이 악화되자 지체 없이 법원에 회생을 신청했다.
이러한 행태에도 MBK 측은 “배당을 받은 적 없다”고 항변했지만, 검찰은 MBK와 홈플러스의 경영진이 신용등급의 하락 전망과 회생 신청 계획을 숨기고 단기채권을 발행한 사기 혐의 등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사모펀드는 종종 국내에서 세간을 놀라게 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2019년 7월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전환사채(CB)를 편법 거래하면서 수익률을 조작하다가 10월 들어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발생시켰다. 결국 대규모 투자자들에게 1조6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주며 극심한 고통을 줬던 라임 사태의 장본인으로 전락했다. 부실 사모사채에 투자하고 문서 위조 등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5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발생시켰던 옵티머스 자산운용 등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해외에서도 국가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다수 있다. 1992년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영국 파운드화를 대규모 공매도해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방어를 무력화시켰다. 결국 영국이 ERM(유럽환율메커니즘)에서 탈퇴하며 경제에 큰 충격을 받은 ‘검은 수요일’ 사태를 초래했다. 보통 헤지펀드는 비공개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사모펀드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시장의 변동성을 활용한 보다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통해 고수익·고위험을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사모펀드의 긍정적 영향도 존재한다.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인수와 KKR의 OB맥주 인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6년 스카이레이크는 위기 상황이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를 인수해 초기 어려움에도 발 빠른 전략 수정과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이끌어 성공적인 턴어라운드를 일궈냈다. 이 투자로 원금 대비 약 6배인 2000억원의 수익을 올렸고, 아웃백의 체질도 강화시켰다. KKR은 2009년 중반 2조3000억원에 OB맥주를 인수해 철저한 소비자 중심의 전략을 전개한 덕분에 한국 맥주 시장 전체를 확장시키는 긍정적 변화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2014년 초 6조2000억원에 재매각하며, 3조5000억원의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사모펀드와 인수 기업, 시장 등 3개 주체가 모두 성장한 사례로 평가된다.
최근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 한 곳이 HJ중공업에 2000억원 규모 투자를 위해 프로젝트펀드를 조성한 것도 눈에 띈다. HJ중공업은 조선업 호황에도 부채비율이 530%로 여전히 높은 상태로 과도한 부채 구조 개선이 관건이다.
이번 투자는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덕분에 금융권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위한 신용도가 제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생 PEF의 대규모 첫투자라는 점에서 이목이 쏠렸는데, 국내 사모펀드업계에 긍정적인 영향과 선순환을 주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낼지 시장이 주시하고 있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코스피·KOSPI) 시장위원회 위원, 금융감독원 옴부즈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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