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지휘소’라 불리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도입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사업에는 미국 보잉(E-7A)과 L3해리스(G6500), 스웨덴 사브(글로벌아이)가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군은 3조원을 들여 2031년까지 4대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입찰이 계속 유찰되어 전력화 시기 충족이 어려운 모양새다.

사업을 주관하는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6일 항공통제기 2차 사업 입찰 재공고를 냈다.
2023년 11월과 지난해 2월 1·2차 입찰에선 제안서 평가 과정에서 2개 업체가 필수조건을 일부 충족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3차 입찰에선 필수조건이 충족돼 시험평가와 협상 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에 입찰 재공고가 진행되면서 항공통제기 2차 사업 기종의 연내 선정은 매우 어려워졌다. 관련 절차와 재정여건 등을 감안하면 사업 일정 추가 지연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군이 기존에 운용 중인 E-737이 거의 매일 대북 감시에 투입돼 작전·운영유지 부담이 가중되고 있고, 미국에선 E-7A 대신 E-2D를 도입하려는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늘어난 변수에 사업 추진 복잡해지나
2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항공통제기 2차 사업 입찰은 지금까지 세 번 유찰됐다. 방위사업청은 네 번째 입찰을 진행 중이며, 30일까지 제안서 접수를 받을 예정이다.
최근까지 방위사업청은 보잉(E-7A), 사브(글로벌아이), L3해리스(G6500)를 상대로 협상을 진행해왔다.
해외에서 무기를 도입할 때는 성능과 기술 등을 평가하고 절충교역(무기 구매에 대한 반대급부) 협상을 진행한다.

이후 최종적으로 가격 협상을 해서 기존에 설정된 총사업비 규모에 맞는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나오면 선정 작업을 하게 된다.
항공통제기 2차 사업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업 후보기종이었던 E-7A와 글로벌아이, G6500은 공군이 설정한 성능은 충족했다.
사업 초기 전·후방 감시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글로벌아이는 한국형 기종에선 360도 감시가 가능하도록 센서를 추가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과 성능, 상호운용성 검증과 절충교역에 대한 협상을 거치면 가격 문제가 남는다.
국가재정법 등에 따르면, 정부가 사전에 확정한 총사업비에 맞는 수준의 가격을 업체들이 제시해야 정부가 최종 선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항공통제기 2차 사업에선 3개 기종 모두 최종 제안 가격이 총사업비를 넘어섰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수천억원 정도 초과한 것으로 안다”며 “조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예산 초과 외의 사유도 거론된다.
A업체는 첫 제안보다 성능이 낮은 일부 구성품들을 뒤늦게 제시했고, 가격 측면에선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업체는 대금 지급 일정에서 이견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은 무기도입사업에서 사업 기간 매년 업체에 지급할 예산 등을 사전에 정한다. 이를 연부액이라고 한다.
이번 사업에서 방위사업청과 B업체는 연부액을 놓고 시각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과 방산업계에선 사업이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입찰 재공고를 통해 사업 절차를 다시 진행한다면, 이론적으론 연내 기종선정이 가능할 수도 있다.
기술과 성능, 상호운용성 등은 기존 평가·협상 자료를 쓰고, 가격과 절충교역만 재협상하는 것이다. 순조롭다면 연내 기종 선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가격 조정은 난제다. 코로나19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항공기 원자재와 부품, 장비 가격은 크게 치솟았다.
항공기 제작에 쓰이는 알루미늄, 티타늄 등의 소재는 지상·유도무기에도 활용된다.
반도체 칩도 다연장로켓과 지대공미사일 등에 많이 쓰인다. 전 세계적으로 무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이같은 원자재와 부품 수요와 가격이 폭등했다.
항공기에 쓰이는 장비나 부품 제작 기간도 길어지고, 비용도 상승하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T-50 장착 엔진을 만들 땐 24개월이 걸렸지만, KF-21 엔진 제작에는 이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걸리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교란, 인력 이탈과 인건비 상승,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재난 등이 겹친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입찰 재공고를 해도 막대한 비용을 단기간 내 인하하기는 쉽지 않다.
입찰 재공고를 했음에도 가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총사업비 증액 요구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6∼8개월간 사업타당성조사를 재실시해야 할 수도 있다.
군 안팎에서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이 2년 정도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2019년 해상초계기 사업 당시 미국산 P-8A를 수의계약의 일종인 미국 정부 보증 대외군사판매(FMS)로 도입했던 것처럼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을 추진해서 전력화 일정을 최대한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격을 대폭 인하할 요소가 마땅치 않는 상황에서도 경쟁입찰 체제를 유지하다 전력화 시기가 지연되는 일이 발생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E-7A 필요없다” 미국의 반전
항공통제기 2차 사업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기종은 E-7A다. 비즈니스 제트기를 쓰는 다른 후보기종들과 달리 보잉 737 여객기를 플랫폼으로 사용하고, 노스롭 그루먼이 만든 대형 레이더를 장착한다.
글로벌아이는 서방권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중 가장 최신형이고, 최근 프랑스가 도입 의향을 밝히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작전 고도와 비행거리, 탐지범위 등은 E-7A가 더 우수하다는 평가다.
G6500은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엘타(ELTA) 레이더 등의 장비를 탑재한다.
이스라엘은 지난 2023년부터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과 잇따라 교전을 벌이고 있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한국에 방산 장비를 제때 공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군에서 대대적인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군은 노후화한 E-3를 E-7A로 대체하고, 근본적으론 우주 기반 위성 네트워크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최근 미 국방부는 E-7A 대신 미 해군 E-2D를 구매하려는 조짐을 드러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최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E-7은 늦게 개발되었고 비용이 더 많이 들고 ‘과도하게 고급화’된 장비”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원 청문회에서도 E-7에 대해 “현대전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2D는 미국 노스롭 그루먼이 제작한 항공모함 탑재 공중조기경보통제기다. 1960년대 처음 등장해서 성능개량을 거듭해왔다.
적 항공기나 수상함을 탐지하고, 아군 항공기를 지휘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지상이나 해상 표적도 제한적이나마 탐지가 가능하다.
E-2D는 검증된 플랫폼으로서 리스크를 낮추고 미 해군과의 공둥운용을 통해 운용유지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함재기라 극한 환경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다.
하지만 항속거리, 체공시간, 탐지범위 등에서 E-7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미군이 실제로 E-7 도입을 취소하고 한국이 구매를 하면, 도입비와 운영유지비 상승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 공군이 E-7을 구매하면, ‘규모의 경제’를 쉽게 달성하게 된다. 한국으로선 구매비 절감 효과와 더불어 성능개량이 한층 용이해지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미군이 도입하지 않는다면, 비용과 성능개량 등에서 한국의 부담이 한층 커진다. E-2D는 산악 지형이 많고 북한 탄도미사일 대응 소요가 많은 한국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사업 지연과 미국의 움직임에 대비, 지난 2022년 정부 안팎에서 거론됐던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국내 개발 방안을 다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내부 검토를 거쳐 핵심구성품(레이더) 개발을 해외 업체와 협력해서 진행하면 체계개발에 7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국내 핵심기술 부족’을 이유로 레이더 등 탑재장비 개발을 포함해 12년이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해외 기술협력을 진행하면, 개발기간은 짧아질 수 있다.
신형 공중조기경보기 전력화가 늦어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미국 내 움직임까지 더해지며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와 군 당국의 치밀한 사업 관리와 대안 마련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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