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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침묵 아닌 직시할 때 치유·화합 가능”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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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17 06:00:00 수정 : 2025-06-16 23: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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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사령관의 그림자’ 푈커 감독

홀로코스트 생존자·자녀 등 다뤄
2025년 에미상 최우수 다큐 후보 올라
가해자 후손도 집중 조명해 눈길
“두 사건 유사… 여전히 진행 중
4년 걸친 작업 끝에 작품 완성”

“처음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던 인물이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자신의 트라우마를 표현할 언어를 찾기 시작했어요. 4년에 걸친 프로젝트가 그렇게 만들어졌죠.”

독일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를 지휘했던 사령관의 아들이 홀로코스트 생존자 및 그의 딸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사령관의 그림자’(The Commandant’s Shadow)는 2025년 에미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다니엘라 푈커 감독을 지난달 28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만났다. 국내 일간지와는 최초 인터뷰다. BBC방송 프로듀서로 12년간 일한 그는 현재 영국 런던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다니엘라 푈커 감독이 지난달 28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제주포럼 제공

홀로코스트 다큐영화를 만든 것을 계기로 올해 제주포럼에 초청받은 푈커 감독은 1947∼1948년 발생한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한 ‘과거에 연루되기: 재현·책임·윤리’ 세션에 발표자로 참석했다. 그는 “4·3사건에서 볼 수 있는 침묵은 수십년간 극복되지 못한 것이었고, 제가 다룬 홀로코스트나 르완다 집단학살 등과도 유사하다”며 “이런 사건들에서 공통된 요소인 침묵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될 때 계속된다”고 말했다.

푈커 감독은 이번 포럼 참석을 계기로 4·3사건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매우 지역적이고 특별한 성격을 지닌, 단순히 냉전기의 비극으로 넘길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례로 사건 이후 8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도 일부는 무죄를 선고받기 위해 재심을 진행 중이다. 그들에게 이 일은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영화 또한 홀로코스트에 연루된 이들이 여전히 짊어지고 사는 것들을 상기시키며, 이를 똑바로 바라본 다음에야 치유와 화합이 가능함을 강조한다. ‘사령관의 그림자’라는 제목은 집단학살의 가해자가 자신 및 피해자의 가족 전체, 후손에게 깊은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로 지었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가해자의 후손이 겪는 심경의 변화와 트라우마의 깊이에 주목해 눈길을 끈다. 푈커 감독은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존자나 피해자의 경험에 집중하지만, 가해자 없이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저는 양측을 모두 보여주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사령관의 아들 한스 위르겐은 아버지의 과거를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없었다. 어느덧 80대 후반이 된 그는 평생의 침묵을 깨고 가해자인 아버지에 대해 말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푈커 감독은 그와의 인터뷰를 회상하면서 “작업이 짧게 끝났다면 이런 깊이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오랜 시간을 들이면서 매번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본모습을 직면하는 사람의 변화를 담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었다. 사형당하기 전 그의 아버지가 쓴 자서전을 아들이 처음으로 소리내어 읽는 장면도 그렇게 촬영했다.

촬영이 계속되면서 아들은 아버지의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푈커 감독은 말했다. 그가 굳게 닫힌 입을 열고 이런 입장을 영화를 통해 밝히려 한 과정은 하나의 심리치료처럼 보이기도 한다. 푈커 감독에 따르면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느끼기까지 3년쯤 걸렸다. 촬영이 끝난 후에도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기 위해 한스 위르겐과 매주 통화를 했고, 그는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작품에 대해 전 세계가 보이는 관심은 제작 초반만 해도 예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아무도 자금을 지원하지 않아서 처음엔 혼자 자료 조사와 제작, 연출, 촬영까지 해야 했다”며 “이렇게 전 세계에 배급이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4·3사건이 계기가 된 것처럼, 각국의 문화적 맥락에 따라 영화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고도 했다.

한국도, 제주도 이번이 첫 방문이라는 푈커 감독은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딸과 함께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제주포럼 기간 열린 ‘사령관의 그림자’ 특별 상영회에 참석한 그는 서울과 비무장지대(DMZ)에도 방문할 것이라 했다. 푈커 감독은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 중 하나”라며 “전쟁 후 가난을 극복하고 이만큼 성장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제주=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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