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도심 한복판에서 까마귀의 공격을 받았다는 내용의 119신고가 늘고 있다. 도심에 출몰해 행인 등을 공격하는 까마귀는 텃새인 큰부리까마귀로, 평균 몸길이가 56㎝이고 날개를 펼치면 1m에 이른다. 번식기엔 예민해져 둥지 주변에선 주로 사람의 머리를 겨냥해 조용히 급강하한 뒤 발톱이나 부리로 뒤통수나 목덜미를 공격한다는 전언이다. 부리는 성인 엄지손가락 5분의 4 크기로 굵고 날카로우며 무는 힘도 강해 한 피해자는 주먹으로 때리는 줄 알았다고 한다.
큰부리까마귀는 3월부터 6월 하순까지 주로 산림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저지대로 이동하는데, 요즘에는 도심의 나무에 둥지를 튼 개체가 흔히 발견된다. 지난 5년간 개체수가 10배 이상 늘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까마귀가 도시에서 급증한 이유로는 우거진 숲을 비롯한 서식지의 개발, 공원 등 녹지 확대, 음식물 쓰레기 등 먹이의 급증, 경쟁 관계인 까치의 개체수 감소, 따뜻해진 겨울 날씨 등이 꼽힌다.
큰부리까마귀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데다 전선에 있는 벌레를 먹으려고 쪼아대면서 정전 사고도 자주 일으켜 2023년 12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바 있다. 도시에선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헤집거나 택배물을 물고 달아나는가 하면 야외 매장에 진열된 달걀을 노리는 간 큰 녀석까지 있어, 한마디로 천덕꾸러기 신세다. 안 그래도 까마귀는 온몸이 검은 데다 울음소리가 시끄럽고, 사체를 파먹는 습성 탓에 흉조 이미지가 짙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까마귀는 이런 푸대접을 받는 게 억울할 듯하다. 고구려에선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를 국조로 섬겼다. 삼국유사의 신라 설화 ‘연오랑과 세오녀’에서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떠내려가 왕과 왕비가 된 이 부부의 이름에 공통으로 ‘烏’(까마귀 오) 자가 들어간 것은 고귀함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마을 입구에 세운 솟대엔 수호신으로 까마귀 장식이 오른다. 약간 푸른빛을 띤 채 광택이 나는 검정색의 까마귀를 보고 있자면 오늘날 학위 가운이나 신부의 미사복, 판사의 법복 등에서 풍기는 경건함마저 든다. 도심에서도 인간과 까마귀가 공존할 길을 찾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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