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칭 전력 보완하는 중심축 돼
현대전 양상 변화 시사한 큰 사건
北 공격 대비 방어시스템 구축을
“당신은 카드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 지난 2월 28일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 휴전에 앞서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윽박지르듯이 던진 말이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는 트럼프의 추궁에 행동으로 답했다. 지난 1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4개 공군기지에 대해 ‘거미집 작전(Operation Spider’s Web)’으로 명명된 기습 드론 공격을 가해 수십 대의 항공기를 파괴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발표에 따르면 키이우 당국은 1년 6개월간 주도면밀한 준비를 거쳐 목표물인 러시아 공군기지 인근까지 목재 컨테이너로 위장한 트럭에 드론을 실어 보낸 후 원격으로 드론 117대를 띄워 장거리 전략폭격기·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 러시아 공군기 40여 대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최전선에서 무려 4300㎞나 떨어져 있는 ‘벨라야’ 공군기지 인근까지 트럭을 접근시켜 공격을 성공시킨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SBU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는 Tu-22M3·Tu-95MS 등 보유 전략폭격기의 34%를 상실했고 9조6000억원의 피해를 당하였다. 핵전력 3축 체제 가운데 하나인 전략폭격기 상당수가 파괴된 것은 러시아에 엄청난 타격이다. 이는 미·러 간 핵 균형 체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계속 공세를 이어갔다. 러시아 공군기지 공습 이틀 뒤인 지난 3일 우크라이나군 당국은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크름대교를 공격해 교각 일부를 수중 폭파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공세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인 응징 공격을 예고했다. 종전 논의 속에서 지난 수개월 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러·우 전쟁이 확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번에 일어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군기지 드론 공습은 러·우 전쟁뿐 아니라 현대전의 양상 변화를 시사하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우선 이번 공세로 우크라이나는 전쟁 수행과 협상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킬 기회를 얻었다. 스스로 유력한 카드가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금지를 주장해 왔다. 또한 점령지의 영토 인정 및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등을 휴전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크름반도를 포함해 점령지로부터 러시아군의 완전한 철수를 휴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의 미국은 휴전 조건에 대한 명확한 중재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양측에게 조속히 휴전에 합의하라고 종용해 왔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안전보장 약속 없이 지원 중단 카드까지 내보이면서 러시아와의 휴전 합의를 압박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우크라이나의 기상천외한 드론 공격은 미국과 러시아 중심의 휴전 협상 흐름을 흔들어놓았다. 러시아와 미국은 이제 우크라이나를 패배자로 기정사실화하기 어렵게 되었다. 더욱이 키이우는 유럽 등 서방과의 연대를 더 공고히 할 발판을 마련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공군기지 타격이 갖는 또 다른 함의는 현대전에서 드론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AI) 장비가 탑재된 드론은 낮은 비용으로 높은 정밀도를 갖춤으로써 방공망을 회피하면서 상대방의 후방 깊숙이 침투해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 이제 드론은 비대칭 전력을 보완하는 현대전의 중심축이 된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022년 말 북한이 날려 보낸 드론이 용산 대통령실 인근까지 비행해 한바탕 난리가 난 기억이 생생하다. 2023년 창설된 ‘드론작전사령부’를 중심으로 북한의 드론 공격에 대비해 철저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드론전에 대한 대비 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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