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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얇은소설] 모두가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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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12 23:10:33 수정 : 2025-06-12 23: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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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하지 않는 이웃 사이
작은 실수로 오해는 점점 커져
미운 것과 싫은 것은 꽤 다른 일
서로를 이해하면 모두 해결돼

라오서 ‘이웃’(‘라오서 단편선’에 수록, 박희선 옮김, 인사이트브리즈)

얼마 전에 중국 산둥 대학에 갈 일이 있었다. 일정을 마친 후 대학 관계자들이 제남(齊南) 일대를 둘러볼 기회를 주었다. 산둥성 지역에 와본 게 처음이라 여기저기 보고 싶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그간의 중국 체류 경험으로 보면 박물관이나 기념관 같은 데는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서 둘러보는 데만 해도 반나절쯤 걸렸다. 표돌천이나 대명호 정도 산책하면 좋겠다 싶어 일정 담당자에게 ‘산둥성 박물관’과 ‘노사 기념관’은 생략하자고 할 요량으로 ‘노사’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유명한 소설가인데요, 하기에 누구지? 싶었다.

조경란 소설가

노사(老舍). 발음을 듣고서야 뒤늦게 알아차렸다. 라오서.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은 장편 ‘낙타 샹즈’가 아닐까. 내가 처음 라오서를 좋아하게 된 작품은 가슴 아픈 모녀의 이야기인 중편소설 ‘초승달’이었고 그 뒤로 그의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찾아 읽었다. 서민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들의 고된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 때문에. ‘라오서 단편선’에는 인간 본성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풍자적이고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초·중기 단편 네 편이 수록돼 있다.

단편 ‘이웃’에는 두 부부,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우선 밍 부인. 자신이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게 큰 결점이라고 여겨 글을 아는 다른 여성을 미워한다. 의심이 많고 이웃과 고용인들에게 자신의 존엄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남편 밍 선생은 가부장적이고 성실하지만 오만하며 이웃이 인사를 하면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 부부의 공통점은 어린 자식들에게만은 헌신적이며 그들을 끔찍이 아낀다는 것이다. 밍 부부의 이웃이 양씨 부부. 두 사람 모두 밍 선생이 ‘가난뱅이에 못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교사이며 예의와 존엄을 지키고 싶어 한다. 이런 두 집 사이에 낮은 담이 있었다.

양씨 부부의 포도나무에서 삼 년 만에 작은 송이가 열렸다. 그걸 밍씨네 아이들이 장난으로 훔쳐 갔다. 양씨 부부가 ‘교양’을 지키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재미가 붙은 아이들이 화초까지 갖고 갔다. 양씨 부부는 밍씨 부부가 사과하기를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 그래서 양씨 부인이 밍 부인을 찾아가 아이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예의 바르게 말했더니 밍 부인이 냉담하게 대꾸했다. 우리 아이들은 포도를 가지고 놀기 좋아하니 그러면 여기 살지 말고 이사 가라고. 이렇게 두 이웃에게 문제가 불거져버렸다.

양씨 부부는 “막돼먹은 사람과 말다툼하는 건 신분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번엔 밍씨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주 정중하게. 그러면서 또 기대했다. 밍 선생이 편지를 읽고 감동해서 직접 사과하러 오기를, 자신의 인격과 글솜씨에 감탄하기를. 두 부부, 네 명은 모두가 이 일이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쉬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밍 부인은 편지를 받자마자 불안함을 느낀다. 서로의 계략과 오해, 작은 욕망이 얽히고 부딪친다. 이제는 양씨 부부도 “교양인으로 사는 게 손해 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결말에 이르게 할까?

토요일에 이 두 집 사이에 한 번 더 작은 전쟁이 벌어졌다. 밍씨는 깨진 자신의 집 유리창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더 이상한 건 그걸 부순 양씨가 그렇게 싫지도 않다는 생각까지 든다. “미워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꽤나 다른 일”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기에 미워한다는 말속에는 아주 조금의 ‘감탄’의 기미가 들어 있었다. 일요일이 되었다. 양씨는 뜰에서 화초를 정리하고, 밍씨는 유리창을 고쳤다. 그리고 라오서는 마지막 문장을 썼다. “세상은 아주 평안하고, 인류는 서로를 이해하게 된 듯했다”라고. 어쩌면 ‘노사 기념관’ 입구의 동상처럼 인자한 미소를 띠며 썼을지도 모른다. 그가 소설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건 타인에 대한 이해와 화해의 모색인 듯해서.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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