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조사처 “공소시효 폐지돼야” 주장
여가부, 다른 법과 형평성 문제 등으로 ‘신중’ 입장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 전경호 부장판사는 지난 4월7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친족관계에의한강간)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A(70대)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1985년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친딸을 277회 성폭행하고, 딸을 임신시켜 낳은 손녀에게도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첫 범행을 당한 이후 4번의 임신과 낙태를 반복했다. A씨는 이도 모자라 자신과 딸에게서 태어난 손녀가 10살도 되기 전에 성폭행을 저질렀다. A씨의 딸은 자기 딸마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자 사회에 도움을 청했고, A씨의 천인공노할 범죄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처럼 친족성폭력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특성상 피해가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행법상 13세 이상 피해자인 경우 공소시효가 적용되고 있어 훗날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미성년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적극 검토해야’ 보고서에 따르면 성범죄의 경우 강간죄는 10년, 강간치사죄는 25년, 강간치상죄는 15년의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다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13세 미만 아동 등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미성년 성폭력범죄 공소시효의 경우엔 피해자가 성인이 된 날부터 진행된다. 문제는 친족성폭력 범죄가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수십년이 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공소시효가 적용되는 13세 이상 미성년자는 친족성폭력 범죄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4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친족성폭력 피해 상담자의 절반 이상이 공소시효가 지난 후에야 상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로 국회에서도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22대 국회 들어 현재까지 관련된 개정법률안이 4건 발의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성년 대상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거나, 공소시효를 늘리는 내용 등이 담겨 있는데 모두 상임위 단계에 계류돼있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법 개정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13세 이상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범죄와 형평성이나 사회적 처벌 감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가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신영숙 차관은 3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에서 “친족성범죄의 특성, 형평성, 사회적 처벌 감정 같은 부분들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정부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다른 범죄와 형평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친족성폭력의 은폐 가능성과 피해자의 신고 지연 등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라며 “이는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를 찬성하는 국민의 법 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사법대학)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 친족성폭력 범죄를 당해도 외부에 알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법의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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