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의 해발 430m 미륵산성 정상부에 저수조를 만든 백제인들의 집념과 정교한 기술이 1400년의 세월을 넘어 모습을 드러냈다.
익산시는 전북문화유산연구원과 지난해부터 공동 진행한 미륵산성 발굴 조사에서 백제 사비기 추정 목간과 다양한 토기류가 출토되며 고대 수리 시설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조명받고 있다.

11일 오전 익산 미륵산성 장군봉 아래 현장에서 열린 공개 설명회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는 단순한 고고학적 발견을 넘어 백제인의 생존 방식과 제의 문화, 기술력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라고 밝혔다.
미륵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가 1822m에 달하며, 고대 동아시아 성곽 건축술의 진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0년부터 이뤄진 3차례 조사에서 통일신라 이후로 판단되는 문지(동문지, 남문지)와 치성을 비롯해 건물지, 집수시설 등이 조사됐으나, 백제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찰하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원형 석축 저수조다. 수원이 부족한 산 정상부에 물을 가두기 위해 점토와 나뭇잎, 삿자리, 깬돌 등을 층층이 쌓아 방수 효과를 높인 구조는 현대적 방수 공법을 연상케 한다. 저수조는 지름 6.7m, 깊이 1m 규모로 4차례 이상 개·보수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저수조는 무른 암반을 파고 바닥에 80㎝ 정도 점토를 채운 뒤 나뭇잎과 삿자리(갈대를 여러 가닥으로 줄지어 매거나 묶어서 만든 자리), 편평한 바닥돌을 차례대로 깔았다. 저수조 벽석 외부는 점토를 다져 방수했으며 그 폭은 1.6m이다. 외곽에는 깬돌을 사용해 최대 6단의 차수벽을 돌렸는데 현존 높이는 1.5m이다.
저수조 내부에서는 삼족토기·개배·병형토기·단경호 등 백제 토기를 비롯해 가야계 심발형토기, 고구려계 장동호(長胴壺)·암문토기·옹형토기 등의 토기류가 출토됐다. 특히 ‘병신년 정월기(丙申年正月其)…’라는 간지(干支)명이 적힌 목간(木簡)도 나왔다. 이는 백제 사비기인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 사이로 추정되며, 미륵산성의 축조 시기와 기능을 밝히는 결정적 열쇠로 기대된다.
현장에 참여한 시민 송경희 씨(58·익산시 모현동)는 “어릴 적 미륵산은 단순한 등산로로만 여겼는데, 이런 귀한 유적이 묻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백제 문화의 깊이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가리를 일부러 깬 토기가 다수 확인된 점과 저수조 입지 등을 근거로, 이 시설이 단순한 저장고를 넘어 제의 공간이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향후 목간 판독과 토기 분석, 연대 측정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익산시는 이번 조사를 계기로 미륵산성의 체계적인 정비와 활용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익산 백제왕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역사문화 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이번 조사가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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