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참여·소통으로 실용 정부 구현해야

이번 대선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단순히 분노의 대상에 대한 응징으로만 본다면 이번 대선 역시도 과거 선거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한 시대의 종말인지 아니면 연장일지는 앞으로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민심의 저변에 흐르는 갈망이 있었다면,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한 일시적 책임 추궁은 아닐 거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움직이며 만들어 왔다고 믿는 구(舊)시대의 가치와 문화 등 전반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믿고 싶고,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희망이 아닐까 싶다.
정부도 변화의 무풍지대에 있지 않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이며 선제적인 자기 혁신이 요구되며, 새 정부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철학적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이 빈말로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부터 새로워져야 하며, 그 첫발은 관행적인 과거 정부 모습과의 단절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정부를 정의하고 새로운 가치와 역할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특히 정부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존재해야 하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문제의식과 주장이 가능하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 국민이 원하는 좋은 정부는 어떤 모습일까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의 다양한 환경 변화를 하나의 색깔로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구성과 운영 원리, 구성체의 역할과 기능 등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좋은 정부에 대한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현실적이지 않다.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임을 표명했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것이며, 정의로운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정부, 국민 모두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살붙이기를 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정부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누구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가 중요하며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간단하다. 국민이 원하는 좋은 정부를 만들면 된다. ‘좋은’의 의미는 다차원적이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구성물이기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국민이 원하는 좋은 정부의 의미 구성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사회적 논의를 위해 하나의 명목적 정의를 생각해 보면, 좋은 정부란 현시대가 요구하는 보편적 가치(개방, 참여, 소통, 투명 등)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가치(예, 정의, 공정 등)를 구현하는 국민이 중심이 되는 믿을 수 있는 서비스 정부면 좋겠다. 한마디로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정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지만, 필요한 서비스를 알아서 제공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가 아닐까. 국민은 새 정부의 거창한 명칭이 아니라 개인의 삶이 나아지는 것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항상 부응하지는 못하지만, 정부가 있어서 그렇지 않은 것보다 국민의 삶이 안전하고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한다면 그 정부는 가치가 있다.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정부의 신속하며 효율적인 일 처리도 중요하지만, 대다수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철학적 문제의식 없이 시작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질서한 정부 개혁 시도가 우리의 예고편이 아니길 바란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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