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재정난 가중 이유로 선 그어
자민당, 관광객 면세 제도 철폐 주장
유권자 눈치 보다 외국인 관광객 겨냥
“오버투어리즘 해소” vs “내수 해칠 것”
‘출국세 1000엔’ 인상 방안도 고개 들어
한국인이 해외여행지로 가장 많이 찾는 나라 일본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세수 증대 방안이 급부상하고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시행 중인 소비세 면제 제도를 없애는 한편 출국 시 납부하는 국제관광여객세(출국세)를 올리자는 것이다.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야권이 제기한 소비세 감세론에 정부·여당이 대체 재원 부족을 이유로 선을 그은 가운데 유권자 반발을 최소화할 재정 확보책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자민당 아소 다로 최고고문이 지난달 말 공부모임을 연 뒤 방일 관광객 면세 제도를 원칙적으로 폐지하자는 내용의 제안서를 정리했다고 9일 보도했다. 제안서에는 “방일 외국인의 가전제품·의약품 대량 구입 등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관광입국(觀光立國·장기 경제침체 극복을 위해 관광산업을 육성하자는 일본 정부 전략)의 모습과는 다르다”며 “지방 경제 활성화나 고용 기회 증대 등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일본은 외국인 관광객이 백화점이나 돈키호테 같은 종합 할인매장 등에서 세금 제외 5000엔(약 4만7000원) 이상 제품을 구입하고 여권을 제시하면 소비세 10%(식료품 등은 8%)를 감면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NHK방송에 따르면 아소 최고고문은 앞서 “외국인에 의한 소비세 면세액은 포착되는 것만 2000억엔(1조8800억원)이 넘는다. 제도를 없애면 그만큼 국고로 들어온다”며 제도 재검토 필요성을 주장했다. 공부모임에서는 이에 더해 관광객들이 면세품을 대량 구매한 뒤 되팔아 부정하게 이익을 얻는 일이 많으며, 면세품 판매가 대도시권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면세 제도가 철폐되면 교토 등 인기 관광지를 중심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이들은 기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되팔기’ 문제 해결을 위해 면세 제도를 정비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정책을 다시 뒤집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이 당내에서도 나온다. 일본은 2026년 11월부터 출국 시 면세 구입품의 해외 반출을 확인한 뒤 소비세를 돌려주는 ‘리펀드(환불)형’ 면세 제도를 도입하기로 지난해 결정한 바 있다.
2030년에는 방일 관광객을 2024년(3687만명)보다 70% 많은 600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정부 목표에 반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닛케이는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2020년 외국인 관광객 대상 부가가치세 면세 조치를 폐지했는데, 고급 브랜드 매상이 줄고 소매업 등의 타격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전했다.
출국세 인상 논의는 자민당 요시카와 유미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최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 출국세가 다른 나라보다 적다며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향해 “인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이시바 총리는 “걸맞는 대가를 받는 것은 납세자에 대한 의무”라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출국세는 관광 기반 확충 재원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2019년 신설됐다. 액수가 1000엔(9400원)으로 엔화 기준 호주 6500엔, 미국 3100엔 등보다 적은 데다 관광 기반과 서비스가 향상되면 외국인도 혜택을 받는 만큼 당내에서도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지금은 항공권 요금 등에 포함하는 형식으로 내·외국인 모두에게 부과하고 있어서, 외국인에게만 출국세를 올려 받으려면 새로운 과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가 생긴다.
일본은 지난해 외국인 입국이 2023년 대비 47.1% 증가하는 등 엔화 가치 하락(엔저) 현상 등으로 ‘관광 특수’를 누리는 중이다. 출국세도 지난해 4월∼올해 4월 481억엔(4520억원)이 걷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43억엔(4163억원)을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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