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 평소 착해…내가 죽으면 고생할 것 같아서”
전남 진도군에서 처자식을 살해한 40대 가장이 아내와 함께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포착됐다. 아들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7일 광주 북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승용차를 몰고 바다로 돌진해 처자식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지모(49)씨가 추락 전 아내 A(49)씨와 대화한 기록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가 확인됐다. 블랙박스 상에서는 희미하지만 지씨와 아내의 대화가 오갔으며 경찰은 추락 직전 아내가 살아있었고 두 사람이 함께 수면제를 먹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씨가 홀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내도 범행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아내에 대해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보고 자살방조 혐의를 적용했다.
범행에 사용된 수면제는 평소 조울증을 앓고 있던 아내가 처방받은 것으로, 두 아들에게 수면제와 함께 건넨 음료는 지씨 부부가 범행 나흘 전 자택 인근 약국에서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씨 가족들은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출발해 무안 펜션에서 하루 숙박한 뒤 진도를 거쳤다가 31일 오후 10시30분쯤 목포 한 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때 지씨 부부는 고등학생인 두 아들(18·16)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영양제’라며 건넸다.
잠이 든 두 아들을 태우고 1일 오전 12시49분쯤 진도항에 도착한 지씨 부부는 수면제를 함께 먹은 뒤 지씨가 직접 차량을 운전해 오전 1시12분쯤 바다로 빠트렸다. 그러나 지씨는 막상 차량이 바다에 빠지자 열린 운전석 창문을 통해 혼자 탈출해 40여분 만에 뭍으로 올라왔다. 오전 1시53분쯤 서망항 쪽 도로로 올라와 공용화장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이후 지씨는 인근 야산에서 노숙한 뒤 2일 오후 3시38분쯤 근처 가게 주인의 휴대전화를 빌려 친형에게 연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형은 지인 A씨에게 대신 차편을 부탁했고 지씨는 오후 6시18분쯤 진도에서 광주로 도주했다가 범행 44시간 만에 광주 서구 양동시장 인근 거리에서 체포됐다. 숨진 아내와 아들들은 진도군 진도항으로부터 약 30m 떨어진 해저 면에 가라앉은 지씨의 대형 세단 안에서 숨진 채로 인양됐다.
건설 현장 근로자였던 지씨는 1억6000만원 상당의 빚 때문에 금전적 어려움을 겪자 가족과 함께 생을 마감하려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지씨는 경찰 조사에서 “조울증을 앓던 아내를 돌보느라 직장생활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생계를 감당할 수 없었다”며 “추락 전 수면제를 먹었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니 무서워서 차에서 혼자 탈출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씨 가족은 3~4년 전까지는 아파트에 살았지만, 이후 원룸으로 이사해 네 식구가 한 방에서 생활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씨는 경찰에 “내가 죽으면 아들 둘이 빚 때문에 고생할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며 “아들들은 평소 말도 잘 듣고 착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씨 명의의 보험은 없으며 부인과 두 아들 명의로는 각각 건강보장보험 1건씩만 가입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보험은 치료비 지원 목적의 상품으로, 별도의 보상금은 없었다.
앞서 지난 4일 김호석 광주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지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도망 우려 등 사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아내가 추락 전까지 생존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시신 부검,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아내의 공범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오는 11일까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