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6일 “제복 입은 민주시민들이 국민을 지킬 동안 대한민국이 군 장병과 경찰, 소방공무원들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보훈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군에 대한 문민통제 원칙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제70주년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추념사에서 “거룩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내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합당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나라, 모두를 위한 헌신이 그 어떤 것보다 영예로운 나라가 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군 경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현실화해,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의 헌신에 합당한 예우를 갖추겠다”며 “제복 입은 시민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오직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복무 여건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는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추념사와는 내용 측면에서 크게 다른 모습이다.
가장 눈에 띠는 부분은 ‘제복 입은 민주시민’이란 표현이다. 이 개념은 제복을 입고 있는 군인도 일반 시민처럼 시민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접근 방식을 뜻한다.

‘제복 입은 민주시민’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재탄생한 독일 연방군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프로이센 시절부터 나치 독일 국방군으로 이어졌던 상관에 대한 절대복종 개념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 등에서 독일 국방군이 이를 맹종하게 했다.
전후 서독 정부는 연방군을 문민통제 원칙 하의 민주주의 군대로 만들고자 ‘제복 입은 민주시민’ 개념을 채택했다.
‘제복 입은 민주시민’은 국가안보와 평화·국민 안전을 지키려면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지만, 군인의 뿌리는 시민과 시민적 권리라는 점도 함께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유로운 인격체, 책임 의식을 지닌 시민, 전투 준비 태세가 완비된 군대를 만들게 된다.
독일 연방군 장병들은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양심과 통찰에 의해 최종 결정을 한다.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비민주적이고 비합법적인 명령을 따르면 안 된다. 이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비합리적 명령에 따른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교훈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 1990년대부터 이같은 개념이 소개됐지만, 여전히 절대복종 개념이 강하게 남아있다. 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계엄 직후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제복 입은 민주시민’을 언급한 것은 한국군을 민주주의 사회의 일부로 만들고, 이를 위한 문민통제 및 국방문민화의 필요성을 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국방문민화를 내세웠고, 국방부 장관에 민간인을 임명하는 방안도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 진용이 갖춰지면, 국방문민화를 위한 군 장병 교육과 제도 개선 등의 실질적 조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이 대통령의 추념사에서는 보훈과 유공자 예우, 군인·경찰·소방관 복무 여건 개선 등이 강조됐다.
새 정부의 과제 중 하나인 내란 종식과 맞물려서 민주주의와 문민통제, 안보·보훈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추념사에선 “북한 정권은 역사의 진보를 거부하고 퇴행의 길을 걸으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과 더불어 북한 인권 문제 등이 거론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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