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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질서, 그리고 얼굴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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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5 22:51:22 수정 : 2025-06-05 22: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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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영화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잡다한 사물이 한 곳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시각적 질서에 더해 치밀하게 설계된 컬러 팔레트도 앤더슨 영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웨스 앤더슨의 열두 번째 장편 영화 ‘페니키안 스킴’에 등장하는 특별한 사물은 신발 상자다. 비서의 몸통 절반이 날아가는 암살 시도와 항공 추락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업가 자자 코다(베니시오 델 토로)의 모든 자료는 사업별로 분류되어 신발 상자에 담겨 있다. 자자는 이 신발 상자를 아홉 명의 아들이 아닌 수련 수녀 외동딸 리즐(미아 트리플턴)에게 물려주려 한다. 잡지의 가지각색 코너처럼, 혹은 동화에 등장하는 다종다양한 동물들처럼 분절된 챕터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구성은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서 점점 더 도드라지는 특징이다.

 

지난 5월에 열린 칸 영화제 경쟁후보작인 ‘페니키안 스킴’은 익숙한 웨스 앤더슨 세계의 연속선에 놓인다. 첩보물과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긴 하지만 파헤쳐 보면 영화의 한가운데에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자리한다. 아버지 자자와 딸 리즐은 상속자 지정 문서 서명을 앞에 두고 리즐의 어머니가 죽은 이유에 대해서 알려줄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그러다 한밤중에 문제가 터진다. 자자를 도청하던 수사기관이 필수 건설 자재 가격을 조작해 금액을 엄청나게 급등시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리즐과 함께 페니키아의 여러 지역의 협상 테이블을 오가며 투자자들에게서 자금을 끌어오려 한다. 이 여행에는 자자가 고용한 곤충학자이자 리즐의 가정교사 비욘(마이클 세라)도 동행한다.

‘페니키안 스킴’에는 앤더슨의 전작에 이미 여러 차례 출연한 바 있는 유명 배우들과 새로운 얼굴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리즐 역의 배우 미아 트리플턴, 비욘 역의 마이클 세라는 웨스 앤더슨 영화에 합류한 새 얼굴들이다. 앤더슨 세계에서 새로운 얼굴의 배우에게서는 메이크업을 짙게 한 수련 수녀의 모습이나 고리타분한 북유럽 출신의 곤충학자 같은 캐릭터성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반면 유명 배우들은 익숙함과 친숙함 때문에 단순한 차원에서 분장한 배우 그 자신을 보여주는 듯한 정서가 전해진다. 전작 ‘애스터로이드 시티’처럼 인물의 서사가 비교적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저 독특한 복장을 차려입고 캐릭터에 걸맞은 말투를 구사하는 역할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앤더슨 영화에서 얼굴은 단순하지 않다. 화려하거나 과장된 분장은 캐릭터를 규정하는 동시에 배우 자신의 본질과도 맞닿아 복합적인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말미에 등장하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배우가 가진 고유한 개성에 삽화적인 분장과 이미지가 더해지며, 단 몇 분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앤더슨 특유의 고도로 계산된 미장센에 연극적인 기묘함을 덧입힌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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