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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미래] 환경운동은 ‘잡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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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5 22:51:49 수정 : 2025-06-05 22: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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폄하의 언어 지배한 대선토론회
천성산 도롱뇽·새만금 간척사업
당시엔 떼쓰기처럼 호도됐지만
국책사업 환경평가 정착 이끌어

유식한 담론은 사회적 충동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하며 심지어 매혹적인 형태로 표현하도록 허용하는 완곡어법들의 그물처럼 기능한다. (피에르 부르디외 ‘언어와 상징권력’)

 

부르디외는 사회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유지∙재생산되는지 연구한 프랑스 사회학자였다. 그는 특히 언어를 통한 상징투쟁과 여기서 파생되는 사회적 위계질서를 다뤘는데, 쉽게 말하면 사회란 ‘말을 놓고 벌이는 투쟁의 장소’라는 얘기다. ‘말하기는 그저 의미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언어자원을 활용해 상징적 이익을 얻는 행위’(같은 책, 역자 서문)이며, 세계관을 생산하고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한 상징투쟁이 바로 사회적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핵심 기제라고 봤다.

윤지로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

여전히 의미가 와닿지 않는다면 파멸적인 수준의 상징투쟁이 벌어졌던 최근의 대선 토론을 떠올려보면 된다. 케인지언의 승수효과, 한계소비성향, ILO 컨벤션(국제노동기구 협약), LCOE(균등화발전비용) 같은 아는 사람만 아는 ‘유식한 담론’은 결국 ‘저쪽은 공산주의, 친중좌파’ 혹은 그 반대의 낙인을 찍기 위한 언어 무기로 동원됐다. 더구나 질의와 응답까지 합쳐 겨우 6분30초에 불과한 이상한 토론 규칙으로 말미암아 상징 투쟁은 더 깊은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서로의 세계관을 훼손하며 사회적 골을 더욱 벌려 놓는 결과로 이어졌다. 4일 이재명정부가 탄생했다고 해서 배제와 조롱이 마치 없던 일처럼 봉합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대선은 끝났지만, 지난 토론회 때 나온 기후∙에너지 부문의 ‘상징투쟁’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환경 PC주의. 2000년대 초 정부가 대구~부산 KTX 구간 공사를 위해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려 하자 환경단체가 도롱뇽의 서식지 파괴를 우려하며 공사를 수개월 지연시킨 소위 ‘천성산 도롱뇽 사건’이 2차 토론회에 등장했다. 한 후보는 이 일을 언급하며 “시공 업체는 140억 가까운 피해를 봤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환경 PC주의는 국가 정책을 왜곡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을 PC주의로 낙인찍기 위해 굳이 20년 전 사건을 소환한 것도 유감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얻은 ‘신호’는 무시하고 모두 ‘잡음’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더욱 편협하게 느껴진다.

 

천성산 논란은 1994년 작성된 공사구간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30여종의 보호 동∙식물이 누락된 게 발단이 됐다. 그때만 해도 첫 삽을 뜨기 전까지 환경단체나 주민 목소리를 반영하는 절차가 부족했고, 이들의 뒤늦은 문제 제기는 ‘국책사업 발목 잡기’로 호도되기 일쑤였다. 천성산 도롱뇽 사건, 새만금 간척사업의 홍역을 치르면서 국책사업은 초기부터 환경성을 검토하도록 제도가 바뀌었고, 사전환경성검토제를 거쳐 지금의 전략환경영향평가로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선 ‘운동권 마피아’도 등장했다. 탈원전 정책이 전국 농지와 임야를 태양광 패널로 바꾸고, 운동권 마피아가 보조금을 받아 흥청망청했다는 주장이다. 탈원전과 태양광, 운동권을 하나로 엮어 일망타진하려는 시도이나 하나씩 따져보면 핀트가 잘 안 맞는다. 운동권이 태양광 비리에 연루된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인과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산지(임야) 태양광이 급증한 시기는 산지 태양광의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1보다 크면 ‘장려한다’는 뜻)가 기존 0.7에서 최대 1.2로 상향됐던 때(2015년 3월~2018년 6월)와 일치한다. 다시 가중치가 0.7로 조정되자 40%를 웃돌았던(2016~2018년) 산지 태양광 허가 비중이 2019년엔 3.89%로 뚝 떨어졌다. 또한 태양광 비리는 정부·지자체·공공기관 내부에서도 드러났다. 특정 세력이 아니라 느슨한 제도와 관리부실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비싼 재생에너지’ 프레임은 이미 여러 언론에서 팩트체크를 했으니 한마디만 보태고자 한다. 2010~2023년 사이 글로벌 태양광 단가는 90% 저렴해졌다. 우리가 ‘대량생산∙효율화의 끝판왕’이라고 기억하는 포드 모델 T의 가격은 첫 출시 후 13년간 약 60% 하락했다. 태양광은 포드의 자동차 혁명을 능가하는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우리보다 일사량이 적은 독일도 태양광의 단가 하락을 십분 활용하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태양광은 비싸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윤지로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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