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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권침해 논란에도… 입소 ‘별따기’ [심층기획-‘시설’, 그곳에 장애인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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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02 21:00:00 수정 : 2025-06-05 14: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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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줄 서는 장애인 가족

중증 장애로 입소 자격 있어도
포화 상태에 계속 등록 거부만
시설 ‘복받은 사람’만 가는 곳

입소자 부모 98% “폐쇄 반대”
“종사자 처우 개선” 한목소리

중증 발달장애 경우 돌발행동 등 일상
체구 커지고 소통 어려워 부담은 가중
보호자들 “시설 퇴소땐 생계 막막” 호소
학대 등 인권침해 불구 시설 포기 못해

시설 생활지도원 인건비 최저임금 수준
지도원 한 명당 돌봄 인원 5∼6명 달해
“‘좋은’ 시설은 ‘좋은’ 선생님이 있는 곳”
인력 충원·임금 인상 등 요구 목소리 커
“장애인 아들을 정신병원에 둘 수밖에 없어요.”

공모(60)씨는 2023년 6월 중증 발달장애인 아들 A(31)씨를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 보내야 했다. A씨의 공격 행동이 더 심해지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갑자기 흥분한 A씨는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을 내던지고 깨부쉈다. 생계를 위해 남편은 출근한 상태였다. 아들의 완력을 이겨낼 수 없던 공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당초 종합병원에서 정신과 약을 받아 복용하고 있었던 만큼 경찰과 함께 병원을 찾아 입원을 의뢰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A씨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거부했다. 이미 수차례 자택에서의 난동으로 직접 아들에게 폭행까지 당한 공씨는 정신병원으로의 전원 조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공씨는 2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들이 때려 부수는 탓에 TV만 몇 번을 샀다. 경찰에 신고도 여러 번 했다”며 “더 겁나는 건 나도 이 상황을 제어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감당할 수 없어 정신병원 입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공씨는 아들의 입원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 몰랐다.

 

지난해부터 병원이 아닌 다른 시설에 보내기 위한 시도를 수차례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기만 했다. 돌발 행동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지역의 단기보호센터와 그룹홈(장애인공동생활가정)을 비롯해 중증장애인이 주로 지내는 장애인 거주시설조차 A씨를 거부했다. 거주시설 입소를 위해 대기 등록을 하려 했지만, 시설들로부터 “포화 상태”라는 답만 돌아온다.

그는 “아들이 거주시설 입소 자격이 나왔지만, 정작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이 없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내가 죽으면 아이는 정신병원에서 평생 나오지도 못하고, 누가 꺼내주겠나”라며 눈물을 흘렸다.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최근 5년간 학대가 발생한 곳만 200곳이 넘을 정도로 인권침해 문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공씨처럼 중증장애인 부모 등 가족들은 장애인의 시설 입소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인거주시설 입소대기자는 지난해 8월 기준 1567명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기 362명, 서울 189명, 강원 155명, 충남 145명, 충북 110명, 인천 96명, 경북 91명, 전남 87명, 전북 86명 등이다.

 

◆학대·인권침해에도 대기만 1567명

 

시설 입소를 위해 대기 현상이 나타나는 건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돌봄 부담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탈시설’ 논쟁이 일어난 뒤 거주시설들이 문을 걸어 잠그면서 입소대기자는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2021년 843명이었던 대기자는 2022년 1056명, 2023년에는 1223명까지 늘더니, 지난해에는 1500명을 넘긴 것이다. 정부 및 지자체 지원 축소에 따라 여건이 열악해지면서 시설들은 머물던 거주인마저 내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경기도의 한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돌발 행동의 경향성이 보이는 중증장애인은 이제 시설에서 받지 않는 분위기”라며 “지원이 끊겨 돌볼 인력도 적고,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더 큰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서구에 거주하는 김모(63)씨도 아들의 시설 입소 거부만 6번째다.

 

그에게 시설은 ‘복 받은 사람’만 가는 곳이다. 아들이 지역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를 오가지만, 오후부터는 그가 직접 돌봐야 한다. 지원받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도 하루 3∼4시간일 뿐이다.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은 말을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불가능에 가깝고,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돌발 행동도 일상이다. 키가 178㎝로 건장한 체구의 아들이 몸부림을 칠 때 제지하다가 깨물린 적도 있다. 김씨는 “시설 입소를 위해 경기도를 포함해 다른 지역도 알아봤지만 계속 거부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가올 암담한 미래가 벌써부터 막막하다. 현재는 아들이 평생교육센터를 다니지만, 이용 제한이 있어 기간이 3∼4년밖에 남지 않았다. 5년 전부터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씨는 아들이 다시 집에만 있게 될 경우 생계도 유지하기 어려운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된다.

 

그는 “다른 장애인에게도 기회를 줘야 해 아들이 평생교육센터를 이용할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건 오로지 부모의 몫이다. 젊을 때는 힘이 있어 버텼지만, 이제 나이를 먹어 버겁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씨는 “몸에 성한 곳이 없다. 우울증뿐 아니라 쓸개를 절제하고 신장도 한쪽을 뗐다. 요즘은 폐가 좋지 못해 매달 병원에 정기적으로 간다”며 “아들이 이제 40살이다. 나이 먹으면서 안 좋은 생각마저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거주인 부모들 “종사자 처우 개선”

 

이미 자녀가 거주시설에 입소한 부모들은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외친다. 이들은 자녀를 보낼 곳이 없는 처지에서 종사자 인력 확충 및 인건비 상향 등 시설 환경 개선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시설 입소 자체가 어려운 건 여러 통계에서 확인된다. 자녀가 시설에 입소한 부모들은 시설이 폐쇄될 수 있다는 걸 무엇보다 걱정하고 있다.

 

시설 입소에 성공한 장애인 10명 중 6명은 3년 이상 대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를 통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387명 중 230명(59.4%)이 입소까지 ‘3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됐다고 응답했다. 이어 ‘1년 미만’ 55명(14.2%), ‘1∼2년’ 52명(13.4%), ‘2∼3년’이 50명(13%)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부모 대다수인 379명(98%)이 시설 폐쇄에 반대했다. 폐쇄 반대이유(중복 선택)로는 ‘입소 거주인이 만족해서’(67%), ‘지역사회가 준비되지 않아서’(42.5%), ‘시설이 쾌적해서’(38%), ‘갈 곳이 없어서’(34%) 등이 꼽혔다.

 

심지어 자녀가 시설에서 학대 피해를 봤어도 시설 폐쇄를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겨울 울산 최대 거주시설 태연재활원에서 생활지도원으로부터 9차례 폭행을 당한 아들의 어머니 박영숙(가명?68)씨는 “폐쇄하면 아이는 길거리에 내몰린다. 나이를 먹어 더는 중증 장애의 아들을 직접 돌볼 수 없다”며 “시설 폐쇄만큼은 안 된다. 그저 아들이 남은 삶을 더 안정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학대가 발생하지 않는 쾌적한 시설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와 울산시는 태연재활원 학대 피해자와 거주인을 대상으로 자립 욕구를 조사한 뒤 관련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부모들이 원하는 건 무엇보다 시설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이다.

 

시설 환경에 앞서 자녀를 돌보는 종사자가 더 중요해서다. 거주인의 일상을 지원하는 생활지도원의 인건비는 최저임금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부족한 인력 배치기준 탓에 생활지도원이 돌보는 거주인만 평균 5∼6명에 달한다. 부모들은 정부에 바라는 것으로 ‘거주시설 종사자 처우 개선’을 최우선(77%)으로 꼽았다. ‘생활지도원 충원을 통한 거주인 1대 1 관리’가 73%로 바로 다음이었다. 이어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60.7%), ‘학대 등 인권침해 방지’(35.4%), ‘금전적 지원’(34%) 등이 뒤를 이었다.

 

김현아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대표는 “‘좋은’ 시설은 ‘좋은’ 선생님이 있는 곳이다. 결국 중요한 건 인력”이라면서 “거주인을 사람답게 대해주는 훌륭한 종사자들이 충분한 인력으로 있어야 시설이 더 나은 환경이 된다. 현재는 처우가 매우 열악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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