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연예인에게만 과민한 사회
대중이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으로 난타 당할 일인가
유명 걸 그룹의 인기 멤버가 올린 사진 한장에 온 나라가 며칠째 난리입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사진입니다. 일본의 길거리에서 포즈를 취했을 뿐인데, 문제는 의상과 이모티콘이었습니다. 검은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가 들어가고 숫자 ‘2’가 적힌 옷이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표시가 아니냐는 겁니다. 거기에 사진과 함께 올린 장미 이모티콘이 ‘장미 대선’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같은 시기에 올린 사진 중에는 파란 벽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파란 옷을 입고 찍은 사진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 얘긴 하지 않았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해당 사진에 대해서 2번 후보와 연결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 속칭 ‘샤라웃’을 하면서 엄청난 댓글 세례가 쏟아졌고, 당황한 걸그룹 멤버는 게시물을 삭제하고 기획사에서는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 “일상적인 내용을 SNS에 게시한 것일 뿐 다른 목적이나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멤버는 팬과 소통하는 플랫폼에서 “앞으로는 좀 더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행동하겠다”고 개인적으로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사진이 실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였는지를 떠나서 이게 사과해야 할 일이었나요? 대중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 만큼 무분별하거나 경솔하거나 도덕적으로 그릇된 일이었나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의 사진이 삭제된 이후, 여러 기사가 해당 아이돌의 행동에 대하여 논평했습니다. “대선 기간에 여러 스타는 언행 하나하나를 조심한다”, “투표 인증 사진은 올리지 않고, 올리게 될 경우 오해를 피하기 위해 휴대폰 케이스 색깔이나 머리 염색 색깔까지도 신경 쓴다”, “최정상 걸그룹 멤버로서 언행이 신중하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등등.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휴대폰 케이스 색과 머리색까지 ‘자기 검열’하여야 하는 억압적인 분위기를 올바른 규범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정말로 일상 사진을 찍어 올린 것에 불과하다면 ‘2’가 얼마나 민감한 코드인지 몰랐다는 것이 정치적 무관심을 뜻한다”고 사람들은 또 비난합니다. 어느 한쪽 편을 들면 들었다고 뭐라고 하고, 안 들면 안 들었다고 또 뭐라고 하니 참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어렵겠다 싶습니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욕먹을 이유가 되는 것일까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자기표현을 할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만큼, 반대로 무관심하고 표현하지 않을 자유와 권리도 보장됩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고 해서, 숙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몰매를 맞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특정 인물이나 게시물을 지목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유포하고, 몰지각한 비난과 매도, 심지어 성희롱까지 하는 행위야말로 비난받고 처벌받아야 할 불법행위입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연예인들이 정치적 성향 또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가 있어 왔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문화는 연예인을 ‘공인’으로 보는 해석론과 동일선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은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큰 만큼 법적으로는 당연하고, 윤리적, 사상적으로도 완전무결하기를 요구받습니다. 그래서 연예인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할 경우, 해당 정당과 정치인의 결함이나 정치적 리스크를 수용하고 인정한다는 것으로 왜곡되어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게 단순히 욕만 먹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연예인의 평판이나 이미지와 직결되어 광고 수익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연예인들로서는 몸을 사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처럼 “2번 숫자가 찍힌 빨간 옷을 입어서 죄송합니다” 같은 블랙 코미디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유명인은 일반인보다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해 신중할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너무 확고하게 한쪽에 치우친 모습을 드러내어 불편함을 느끼게 하거나, 인종 차별이나 종교 차별 등 잘못된 편견을 보이거나, 복잡한 사안에 대하여 충분한 정보나 지식 없이 함부로 발언하여 혼란을 초래하거나, 특정 정치 세력의 홍보 도구가 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단순한 ‘현재 정치 정세’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역사 상식이나 역사의식이 결여된 모습도 보여주어서는 안 됩니다. 가치관과 역사관이 형성되고 있는 유소년층이 연예인을 롤 모델로 삼고 따라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연예인에게 옛 속담처럼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의 시집살이를 시키는 분위기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대한민국 법령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이 제한되는 것은 군인, 경찰관, 법조인, 일반공무원, 교육공무원, 선거관리위원 등 일부 직업군뿐입니다. 이에 연예인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무릇 연예인이란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뭐든지 기획사를 통해서만 말해야 한다고 여기던 연예계 문화도 바뀌고 있고, MZ 연예인들은 기획사와 싸워서라도 개인 SNS 계정을 용감히 쟁취해 낼 뿐만 아니라 아예 1인 기획사를 차리기도 합니다. 유독 연예인이라는 직업만 사회에서 고립된 것처럼 무색무취일 것을 엄격히 요구하는 것은 변화하는 세태와도 맞지 않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가수인 미리엄 마케바는 공개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비판하면서 인종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타이타닉’의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환경 운동가로서 기후변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기부금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연예인도 정치적 이슈를 무조건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영향력을 공익을 위해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다만 이들이 틀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남과 다른 목소리’도 수용할 줄 아는 성숙하고 관용적인 시민 의식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거 기간이라고 내내 하얀 옷만 입고 다닐 순 없으니까요.
서아람 변호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