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이상 29%→40%
현금 결제 요구도 늘어나
“대체입법 조속 마련 필요”
여성 임신 관련 입법 공백 시기를 틈타 일선 산부인과들이 임신중지 비용을 올렸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병원들만 이익을 불렸을 수 있다는 지적과 정부와 국회가 대체입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1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입법 공백 시기 여성의 임신중단 인식과 경험 연구’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술적 방법으로 임신중단을 한 490명이 느낀 비용 부담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체입법 시기(2019년 4월11일∼2020년 12월30일)와 입법 공백 시기(2021년 1월1일∼2024년 11월17일)를 구분했을 때 비용이 ‘부담된다’는 응답은 80.1%에서 2021년 이후 84.2%로 올랐다. ‘매우 부담’ 응답은 25.5%에서 35.6%로 10%포인트 늘었다.
낙태죄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폐지됐다. 헌재는 2020년 12월31일까지 관련 법 제정을 권고했지만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2021년 1월1일부터 효력을 잃은 뒤 지금까지 임신중단은 불법도 합법도 아닌 입법 공백 상태다.
임신중단을 위해 지출한 총비용을 묻는 응답에서도 입법 공백 시기에 ‘100만원 이상’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3개 구간에서 ‘50만원 미만’과 ‘50만∼100만원 미만’은 각각 8.0%포인트, 2.3%포인트 줄었으나 같은 기간 ‘100만원 이상’은 29.2%에서 39.5%로 10.3%포인트 늘어났다.
‘현금 결제 요구’도 횡행했다. 조사에서 ‘의료기관이 전액 현금 결제를 요청했다’는 응답은 43.7%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입법 공백이 시작된 2021년(52.8%)이 가장 높았다.

실제로 산부인과에서 고무줄식 가격 책정과 현금 결제할 것을 통보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일례로 A씨는 고민 끝에 임신중지를 위해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산부인과들에 전화 문의를 했다. 대부분 임신 수주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며 내방을 권했고 3곳에서 70만원, 80만원, 120만원이란 답이 돌아왔다. 임신 6주이기 때문에 이 정도 가격이고 20주가 넘어가면 가격이 200만원 이상으로 오른다고 부연하는 병원도 있었다. A씨는 가장 적은 가격을 부른 곳을 친구와 함께 찾았다. 수술 직전 간호사가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고 해 계좌 이체로 돈을 송금했다. 받는 사람 이름은 병원 이름이 아닌 개인 이름이었다.
조사에서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들에게 선택권이 없고, 병원에서 요구하는 비용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B씨는 “의사가 300만원을 불러서 300을 낸 것이지 500을 불렀으면 500을 내야 했을 것”이라며 “이 비용이나 절차가 합리적인가를 묻는다면 병원 입장에서는 ‘싫으면 다른 데 가세요’ 이러면 끝일 것”이라고 말했다. 150만원을 지불했다는 C씨는 “병원에서 ‘나이가 어리니까 조금 할인해 준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입법 공백 시기에 법적·제도적 지원은 부재하고, 임신중단 관련 의료적 관행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돼 의료 서비스 접근이 어려워졌을 수 있다고 본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확한 의료 정보를 얻기 더 어려워졌는데, 이는 법적 공백이 단순 제도상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했다.
비용 상승 역시 마찬가지다. 입법 공백 시기에 비용이 올랐다는 조사 결과를 비춰볼 때 경제적으로 불리한 계층이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법적 공백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며 “사회적 취약계층이 안전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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