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사태 조성 볼 수 없어”
백악관 “사법 쿠데타” 즉시 항소
사법 다툼에 협상 정당성 흔들
‘사법 불신’ 트럼프, 강행 가능성
다른 법 근거 재시행 나설 수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적용해 4월 세계 각국을 상대로 부과한 상호관세가 무효라고 미국 연방법원이 판단했다.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를 놓고 각국 정부와 진행 중인 무역 협상의 정당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전반에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권한 벗어나… 국가 비상 아냐”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은 2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마약 유입 등의 문제로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부과한 10∼25% 관세와 지난 4월2일 발표한 상호관세를 막아달라며 미국 소재 5개 중소기업과 오리건 등 12개 주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인단 청구를 인용했다. 미국 정부는 IEEPA를 근거로 각국 정부에 10%의 상호관세를 이미 부과하고 있으며 국별로 추가로 부과한 상호관세에 대해선 3개월간 시행을 유예한 채 각국 정부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관세 부과의 법적 근거로 삼은 1977년 제정 IEEPA와 관련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의 상품에 무제한적인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IEEPA는 미국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 상황에서 수입 금지, 자산 동결 등의 경제 제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관세와 관련한 권한을 직접적으로 부여하지는 않았다. 원래 관세 부과는 의회의 권한이고, 이를 대통령에게 위임할 때는 법이 정한 제한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법원은 또 지속되는 무역 적자가 경제를 마비시키고 이례적이며 특별한 위협을 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조성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해서도 현재의 무역적자는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 온 만성적인 문제로 법률상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의 정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의 제기된 관세 명령을 무효로 하면서 해당 관세의 시행도 금지할 것을 명령했으며 이 같은 법원 결정의 효력이 원고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미친다고 밝혔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부비서실장은 법원의 결정과 관련, “통제 불능 사법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미 법원은 하버드대 외국인 학생 등록 취소 등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논란의 정책들에 이미 제동을 건 바 있다. 다만 미 언론은 대체로 판결에 관여한 3명의 판사들이 각각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트럼프 1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기에 임명됐다는 점을 들어 이번 판결이 정치적 편향의 결과라기보다는 법리적 해석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판결에 관여한 3명의 판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제인 레스타니 판사는 판결 전 진행되는 청문회에서 “그 논리대로라면 땅콩버터 부족을 이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는 말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협상 중인 외국 정부는 혼란 가중
1심 판결인 이번 판결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미 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 계획을 제출해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현재로선 관세 부과가 언제 어떻게 중단될지도 불확실하다. 법원은 이날 행정부가 관련 절차를 완료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 10일을 부여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 협의를 진행 중인 외국 정부 입장에서는 혼란만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사법 다툼이 진행 중인 상호관세를 대상으로 정부 간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정당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미국 정부가 최근 영국, 중국과 체결한 무역 합의의 정당성도 흔들리게 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완강한 태도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협상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또 법원 항소 절차와 별개로 트럼프 행정부가 문제가 된 상호관세를 IEEPA가 아닌 다른 법을 근거로 재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각각 국가 안보, 무역 불공정을 근거로 하는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이 트럼프 행정부가 IEEPA 대신 취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철강, 알루미늄에 25% 품목 관세를 부과한 바 있으며 1기에는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중국에 관세를 부과했다. 이들 관세 조치는 이번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계속 시행된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권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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