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영화의 세대교체 바람이 심상치 않다. ‘드라이브 마이 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일찌감치 거장 반열에 오른 하마구치 류스케(1978년생) 감독을 비롯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등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미야케 쇼(1984년생) 감독은 한국에서도 이미 컬트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거쳐 국내 개봉한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는 일본이 선배 세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감수성과 영화미학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로의 교체에 성공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등 1990년대에 등장한 감독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것과 비교하면 일본의 영화현장이 얼마나 역동적인지 부러울 지경이다. 한류라는 허울에 가려진 현재 한국영화산업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걱정될 따름이다.
네오 소라 감독의 ‘해피엔드’는 파시즘의 징조가 엿보이는 가까운 미래에, 단짝인 유타와 코우 그리고 그들이 참여하는 고교 음악 동아리 멤버들의 우정에 발생하는 미묘한 균열을 포착한 영화다. 그의 영화에서 젊은 청춘들의 심리적 위기와 용기, 우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것은 카메라만이 아니다. 카메라 못지않게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서사의 전개에 기여하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네오 소라는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전위예술가, 환경운동가인 사카모토 류이치의 혼외자이다. 그가 ‘사카모토 류이치: 오퍼스’에 연출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보았을 때 ‘이 무슨 금수저의 행운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 이내 그런 생각을 싹 지워버렸다. 그만큼 ‘사카모토 류이치: 오퍼스’는 아버지의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여타의 콘서트 영화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친의 음악 세계를 보여주려 한 선택의 과감함이 돋보인 영화였다.

‘해피엔드’는 테크노 음악으로 젊은이들의 심리를 표현하고 서사를 전개한다. 서양음악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부친 사카모토는 오랜 시간 전위 음악을 통해 서양음악의 거대한 뿌리와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대학시절에 심취했던 것은 전자음악과 팝음악이었다. 사카모토가 전자음악에 빠진 이유는 전자음악이야말로 특별한 전문적인 교육 없이도 음악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민주주의적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사카모토는 전자음악을 떠나 앰비언트 음악의 세계에 심취했다. 심지어 젊은 시절 그를 사로잡았던 것들. 이를테면 포스트모던이나 사회주의 같은 것은 자연과 앰비언트의 새하얀 침묵 앞에서 덧없고 무의미한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네오 소라는 아버지가 ‘어른이 되면서’ 결별한 전자음악을 자신의 첫 영화의 토대로 삼는다, 부친이 고민했던 것 그리고 던져버린 것을 자기 영화의 핵심 요소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에 자신만의 미적 감수성을 입혀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 그의 영화에 드리운 아버지의 그림자는 짙으면서도 긍정적이다. 그의 영화 속에서 아버지를 넘어 자신들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하는 아들 세대의 선언문을 보는 듯하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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