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세계적인 프로듀서를 꿈꿨습니다. 한국에서 성공을 경험하며 자신감이 생겼고,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도전하게 됐습니다. 국제적인 무대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싶다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나아갔습니다.”

K-컬처 위상이 치솟은 지금이라면 몰라도 2000년대 초반부터 담대하게 해외 진출을 시도한 오디컴퍼니 대표 신춘수 프로듀서는 이제 꿈을 이루게 됐다. 그의 작품 ‘위대한 개츠비’가 공연 예술의 정점 뉴욕 브로드웨이에 이어 런던 웨스트엔드에도 안착했다. 조만간 서울 무대까지 열리면 그는 서울·뉴욕·런던에서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공연하는 프로듀서가 된다. 2009년 ‘드림걸즈’, 2014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 2015년 ‘닥터 지바고’로 브로드웨이 문을 두드리다 쓴잔을 연거푸 들이킨 끝에 거둔 값진 성과다.
‘위대한 개츠비’의 흥행 현황에 대해 신 대표는 “브로드웨이에선 1년 넘게 순항 중이고 웨스트엔드 역시 높은 예매율과 객석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총 제작비 2500만 달러(2024년 평균 환율 기준 340억원)로 이중 절반은 오디컴퍼니가, 나머지는 외부 투자를 통해 조달됐다. 지난해 4월 개막 이후 지난 18일까지 총 7234만 달러(985억여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개막 이후 주당 100만 달러(13억여원) 이상 매출을 꾸준히 달성하며 브로드웨이에서도 흥행 상위작에 손꼽힌다. 투명한 흥행 성적 공개는 브로드웨이 특징인데 그만큼 혹독한 경쟁체제다. 극장도 흥행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브로드웨이 극장 대관은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한국은 내가 돈을 내면 극장을 쓸 수 있지만 브로드웨이는 흥행 가능성을 심사해서 대관 여부를 결정한다. 또 폐막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오픈런’이라 지금 무대에 오른 공연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구조다. 우리도 2년을 기다려 극장을 배정받았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웨이는 철저한 실적주의라서 작품의 완성도, 투자자 구성, 리딩과 워크숍 결과까지 종합해서 극장주가 판단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작품도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무대에 오를 수 없습니다.”

웨스트엔드는 뉴욕처럼 흥행 수익이 투명하게 공개되지는 않는데 역시 매우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세 번의 실패 끝에 거둔 성공인데 ‘무모한 시도’로 보일 수도 있던 도전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와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이 궁금했다.
“첫 작품이었던 드림걸즈는 한국에서 새롭게 만들어 미국에 가져간 최초의 케이스였습니다. 흥행은 실패했지만,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제가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모했고, 시스템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가 제겐 엄청난 자산이 됐습니다.”

이때 한국식 제작 환경과 브로드웨이의 철저한 상업적 구조 사이의 차이를 직접 체험하면서 워크숍-리딩-트라이아웃-대관 등 정통 브로드웨이 제작 경로를 철저히 따르게 된다. 그런데도 연이은 실패, 특히 ‘닥터 지바고’의 흥행 부진은 신 대표에게도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공연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거 못 버팁니다.” 그렇게 결정한 뒤 모두와 합의해 공연을 내리기로 했다. “‘닥터 지바고’는 제가 프로듀서로 직접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초반에는 티켓 판매도 좋았어요. 그런데 뉴욕타임스에서 좋지 않은 리뷰가 나오자 그날로 매출이 반 토막 나면서 공연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때 정말 심적으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았어요. 비행기에서 내려서 현실을 마주하니까 엄청난 부채가 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이었어요.”
한국에 돌아오니, 국내 경영 상황도 악화된 상태였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투자자와 파트너들의 신뢰였다.


“제가 투자받은 돈으로 딴짓을 한 적은 없었거든요. 카페 하나도 차려본 적 없고, 오로지 공연만 했다는 걸 그분들이 알아줬어요. ‘기다릴게요’ 하면서 저를 지지해줬죠.”
그는 그렇게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안정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그 안정이 오히려 또 다른 결핍을 안겨줬다고 고백한다. “회사도 잘 굴러가고 작품도 흥행하는데, 제가 안 행복하더라고요. 사고를 안 치니까 재미가 없었어요.”
한동안 그는 해외 진출을 스스로 자제했다. 파트너들도 “해외는 좀 미루자”고 말했고 그 역시 “노선 변경이지 꿈을 버린 건 아니다”라며 차분히 준비했다. 이 시기에 그는 “좋은 문학작품으로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다시 떠올렸고, 그것이 결국 ‘위대한 개츠비’로 이어졌다.
“그때의 안정이 저한테 큰 기회를 줬어요. 평생 사고치고 해결만 하다 처음으로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그게 작품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됐죠.”


그렇게 시작된 ‘위대한 개츠비’를 준비하면서 신 대표가 철저하게 고집한 건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지는 단독 프로듀싱이었다. 이전 공동제작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었다. 신 대표는 “공동제작이나 파트너십 제작을 해보면,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다 보면 무언가 빠지기 쉽고, 결정이 늦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작품 하나를 제대로 만들려면 방향성이 확실해야 해요. 그런데 여러 명이 프로듀서로 붙으면 중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아직은 업계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적은 뉴욕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는 신 대표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좋은 작품 만들기다. 오디컴퍼니에선 ‘위대한 개츠비’ 서울 개막에 이어 독일, 일본 공연과 미국 50개 주 순회공연 준비, 그리고 또 다른 신작 개발이 함께 굴러가고 있다.
“돈보다 관객 박수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는 물음에 신 대표는 “사실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을 때 많다. 내가 스스로 만족을 못 했을 때는 돈을 벌어도 만족을 못 한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공연 보고 아주 행복하게 나가는 모습이 제일 큰 기쁨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지킬 앤 하이드’ 20주년 공연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 그동안 관객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어떻게 갚지?’ 결국엔 좋은 작품 만드는 게 첫 번째고 나머지는 더 고민해보자. 그게 제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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