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유학생 비싼 등록금 적용
이들 학비로 미국 학생 지원 구조
유학생 경제 기여 규모 年 59조원
과학·기술 등 인재 19%가 외국인
국가 경쟁력 좌우 분야 피해 지적
하버드大생 ‘트럼프=반역자’ 시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해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심사, 이름 및 국적 공개 등 빗장을 강화하는 조치를 잇달아 취하는 것이 미국의 인재 유치 역량 및 대학 재정을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소비 진작, 일자리 창출 등 경제 부문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외국 우수 인재의 꾸준한 수혈로 가능했던 과학·기술 분야 경쟁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27일(현지시간) 태미 브루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나라에 오길 원하는 모든 (외국) 사람을 심사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도구를 사용한다”며 “모든 주권국가는 (그 나라에) 누가 오려고 하는지, 왜 오고 싶어 하는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폴리티코가 국무부 문건을 입수해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미국 유학생과 교환학생, 방문연구원, 연수자 등에 대한 SNS 검증 과정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각국에 있는 미 대사관에 한동안 입국 비자 신규 인터뷰 일정을 잡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한 걸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태지만 지난 23일 하버드대에 대한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 취소에 이어 사실상 ‘사상 검증’과 다름없는 조치가 유학생들에게 적용되고 비자 발급에 차질이 벌어질 것이 자명해져 미국 대학가는 들썩이고 있다.
우선 유학생 입국에 대한 제한을 강화할수록 각 대학의 재정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크다. 학부와 석사과정의 경우 유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적용받고, 학비 면제도 거의 받지 못한다. 사실상 유학생들이 낸 학비가 다른 미국 학생들을 지원하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학생들이 입국하지 못하면 대학 재정에 큰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 수입의 악화뿐만 아니라 유학생들의 소비에 따른 이익 창출, 여기서 파생하는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미국 비영리기관 국제교육자협회(NAFSA)는 2023∼2024학년도에 전 세계로부터 온 112만명의 유학생으로 인해 37만8175개의 일자리가 유지되고 있으며 유학생이 미국경제에 기여한 규모는 약 430억달러(약 59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 과학·기술 등 핵심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분야에서 미국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산하 국가과학공학통계센터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전체 노동력의 약 19%가 외국 출생자였다. 박사 학위 소지자 중 외국 출생자는 무려 43%에 달했다.
대학 현장의 여론은 악화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보스턴 하버드대 캠퍼스에선 수백 명의 학생이 모여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를 비판했다. ‘트럼프=반역자’라는 피켓이 등장했고, 참가자들은 “강의실의 학생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 학생은 “외국인 친구와 교수, 연구자들이 추방당하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할 위기”라며 “미국 국적인 나는 그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낼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유학생이 이탈하고, 다른 나라에서 이들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유럽, 캐나다 등 미국 외의 영어 공용어권 대학들은 일찌감치 과학 분야 미국 유학생 유치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미국의 외국인 학생 등록 차단 조치로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하버드대 유학생이 발생하면 일본 대학에서 받아들이는 등 지원 방안을 검토하도록 각 대학에 요청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도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한 학생이라면 누구든 홍콩에서 공부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불공평 대우를 받은 학생을 지원하고 그들이 홍콩에서 계속 공부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유학생 인터뷰가 중단되면서 한국 학생을 포함해 미국 유학 준비생들에겐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이날 유학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사 사례와 대처 방안을 묻는 글이 이어졌다. 미국의 새 학기인 입학을 확정지은 학생들은 당장 비자 인터뷰를 신청해 비자를 받고 유학을 준비해야 하지만 언제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언제 미국에 입국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비자 인터뷰 신청이 재개되더라도 학생 개개인에 대한 SNS 검증이 강화되면 처리 속도가 더뎌질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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