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열풍에 '삼겹살에 소주 마시기'도 인기
"드라마 '궁'을 보고 소주를 알게 됐고, 드라마 '검법남녀'를 보고 '소맥'(소주와 맥주) 배웠어요."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소매 마트인 퓨어골드에서 카트에 소주를 담은 사이린(23)은 지난 21일 '소주를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질문에 "한국 드라마를 보는 친구들은 대부분 소주를 알고 있다"며 이처럼 답했다.

그는 카트에 있던 '참이슬 프레시'와 맥주 '산미구엘'을 들어 보이며 "검법남녀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장면을 보고 소맥을 먹기 시작했다"며 "안주는 주로 김이나 진라면, 배달 떡볶이"라고 했다.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에서 5년 동안 MD(상품기획자)로 일한 레예스는 "20∼30대가 소주를 주로 마시는데, 대부분 한국 드라마로 소주를 알게 됐다고들 한다"며 "최근 필리핀에선 한국 드라마 열풍과 함께 소맥 마시는 문화가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필리핀의 회원제 창고형 마트인 S&R에서도 K드라마를 통해 소주를 처음 알게 됐다는 20대를 만났다.
주말에 마실 술과 안주를 사러 나왔다는 나이자(25)는 카트에 '청포도에 이슬' 여덟 병과 '빼빼로' 등 과자를 담았다.
그는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고 소주를 알게 됐다"며 "소주는 주로 불닭볶음면이나 스팸, 리엔뽀(필리핀식 삼겹살 요리)와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킴(30)도 힘쎈여자 도봉순을 보고 가족과 함께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소주는 시식(필리핀식 돼지고기볶음) 등 필리핀 음식과 잘 어울린다"며 "소주와 함께 비비고(CJ제일제당 브랜드) 등 한국 제품을 자주 산다"고 말했다.
S&R에서 열린 소주 시음회 현장에선 소주를 처음 맛본 뒤 구매하는 현지인도 있었다.

현지 소비자들은 한국 소주가 알코올 도수 30∼40도인 필리핀 술과 달리 도수가 낮아 깔끔하다고 평가했다.
필리핀 소비자들은 소주를 찾는 이유 중 하나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을 꼽았다. S&R 기준 소주의 가격은 100㎖당 약 700원으로, 필리핀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위스키인 '푼다도르'(100㎖당 약 860원)보다 싸다.
이처럼 K드라마 인기를 타고 한국의 소주 마시는 문화가 필리핀 2030세대에 스며든 모습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마닐라에 있는 삼겹살 전문점 '삼겹살라맛'(samgyup salamat·삼겹살아 고마워)에서 삼겹살과 소주를 즐기고 있던 안드레이(29)는 "기름진 고기를 먹고 소주를 마시면 입 안이 깔끔해진다"며 "삼소(삼겹살과 소주)를 자주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안드레이가 소주 마시는 문화를 접한 것도 K드라마와 유튜브를 통해서다. 안드레이와 친구들은 술을 마시기 전에 비어 있는 잔이 있는지 둘러본다. 그는 모두가 잔을 채운 것을 확인하고서 잔을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 "타가이!(건배)"를 외친 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원샷'을 외쳤다. 한국의 삼겹살집 풍경과 유사하다.
하이트진로[000080]는 이처럼 필리핀에서 K드라마 인기를 등에 업고 K음식·주류가 현지인들 속으로 파고드는 시너지 효과를 확인하고 앞으로 더 많은 식당, 술집과 협업해 유통망을 넓힐 계획이다.
국동균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장은 "앞으로도 소주가 필리핀의 일상에 스며드는 전략을 강화하겠다"며 "필리핀법인은 현지화 사례를 더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전 세계에서 진로의 대중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이 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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