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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 원했던 美 정치인… ‘참전 용사’ 찰스 랭글 전 의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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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27 07:34:39 수정 : 2025-05-27 08: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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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참전용사 출신으로 미국의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이자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정치인 중 하나로 꼽히는 찰스 랭글 전 연방 하원의원이 미국의 현충일(메모리얼데이)인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CNN에 따르면 고인이 ‘명예 정치인’으로 재직했던 뉴욕시립대 시티칼리지는 이날 랭글 전 의원이 뉴욕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1930년 뉴욕 맨해튼의 빈민가이자 흑인 밀집 지역인 할렘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뉴욕에서 연방 하원의원(민주)으로 당선된 이래 2017년 1월 은퇴할 때까지 46년간 의사당을 지키며 민주당의 대표적인 거물급 흑인 정치인으로 자리 매김했다.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2007∼2010년)까지 지낸 23선의 중진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맺은 한국과의 인연을 의정활동 내내 이어왔다.

 

2010년 6월 24일(현지시간) 찰스 랭글 전 연방하원의원이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6•25 전쟁 60주년 기념식이 끝난 뒤 세계일보 등 일부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은 항상 내 마음 속에”

 

6·25 전쟁 개전 초기 미 2보병사단 503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중국군 공격에 부상까지 당했던 고인은 전쟁에서의 공훈으로 퍼플하트와 동성 무공훈장을 받았고, 2007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1977년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미국 의회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2013년), ‘이산가족 상봉 촉구결의안’(2014년), ‘6·25 전쟁 종전 결의안’(2015년) 등을 발의했고, 자유무역협정(FTA)에 대체로 비판적인 민주당 소속 의원이었음에도 한·미 FTA를 앞장서서 지지해 체결에 기여했다. 지난 2003년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코커스 창설을 주도하며 초대 의장을 지냈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2014년 6월 당시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성을 담은 고노 담화 검증 작업에 나섰을 때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서한을 일본 정부에 보내는데 동참했다. 그 이듬해 아베 당시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의회 연설에서 과거사를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표하는 데도 동참했다. 고인은 2021년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전쟁 때) 부상을 입고 한반도를 떠났을 때는 악몽과도 같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기에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미국의 7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한국은 항상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남북 간 평화를 촉진하면서 우리 두 나라(한·미)가 더 가까워지고, 내 평생에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되길 소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고인은 한반도 통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할렘 출신으로 미국 대표 흑인 정치인 성장

 

한국엔 지한파 정치인이었지만 미국 정치사에서 랭글 전 의원은 흑인 민권 운동으로 유명하다. 미국 의회 흑인 코커스의 공동 창립자였으며, 하원 세입위원회 최초의 흑인 위원이자 위원장을 지냈다. 흑인 인권운동가 앨 샤프턴은 이날 성명을 내고 “할렘, 뉴욕, 그리고 미국의 ‘흑인 엑설런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찰리(랭글 전 의원의 비공식 애칭)와 그의 동지들이 이를 지키기 위해 싸웠기 때문”이라며 “이제 우리가 그가 수십 년간 들었던 횃불을 이어 받아 공동체를 위해 싸우고 정의를 향한 길을 내며, 스스로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랭글 전 의원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는 등 유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47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 육군 제2보병사단의 흑인 전용 부대에 입대하고 6·25 전쟁에서 공을 세운 뒤 1952년 제대했다. 이후 군인 사회재적응법(GI법)을 통해 뉴욕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세인트존스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에서 부검사로 일한 뒤 1966년 뉴욕 주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등 입지전적인 길을 걸었다. 다만 정치 인생 후반기인 2010년 기업이 비용을 댄 카리브해 지역 출장을 수락했다는 혐의로 정치자금 모금 규정 등 윤리규정 위반이 인정돼 하원에서 징계 결의가 채택되는 등 한때 정치적 고비를 맞기도 했다.

 

척 슈머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랭글 전 의원을 “위대한 친구이자 위대한 인물,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지역과 미국의 이상을 위해 싸운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는 그를 “놀라운 애국자, 영웅, 지도자, 개혁자, 그리고 정의의 챔피언”이라며 “하렘과 뉴욕, 그리고 미국은 그의 봉사 덕분에 더 나은 곳이 되었다. 그가 영원히 존엄 속에 잠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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