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관세·안보’ 포괄협상 부담
한·미 일제히 “오보” 부인했지만
北 대화 나설 명분으로는 충분
트럼프 “모든 나라 방어는 끝나”
트럼프 1기 때 北·美 정상회담 후
한미 연합훈련 규모 대폭 축소도
“韓, 경제안보 패키지 딜 준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주장에 한·미 정부가 일제히 선을 그으며 진화에 나섰지만,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한국 내 미군 축소가 북한과 중국에 긴장 완화 조치로 해석돼 북·미 협상 카드 등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의 위협이 커지고 있는 지금, 북·미 대화에서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까지 높이는 셈이라 한국 입장에선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분석된다.
한·미 양국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주한미군 4500여명을 한국에서 철수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라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WSJ 보도 하루 만에 공식 부인 입장을 내놓았고,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도 “사전에 논의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25일 외교가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래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필요성은 미국 주요 인사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주한미군과 관련해 “북한 격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지지한다”(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인도태평양 지역 육군의 전진 배치를 재평가할 것”(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의 발언이 최근 3개월간 나왔다. 이번 미 국방부 입장에서도 주한미군 주둔 현황을 평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향후 상황이 바뀔 여지를 남겼다. 주한미군 규모는 6·25 전쟁 이후 유지됐던 6만명이 197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감축됐고, 2007년부터 현재의 2만8500명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주둔 미군을 줄이거나 병력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꾸준히 언급해 왔고, 이번에 재부상한 주한미군 감축론도 그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24일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도 그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를 방어하는 게 주된 고려였던 날은 끝났다. 우리는 미국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나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압도적 힘으로 적들을 없앨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다른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무게가 실린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한반도안보연구실)은 “미국이 북·미 대화를 위해 주한미군 구조조정을 검토한다고 보진 않지만 이것이 파생될 효과의 하나임은 부인하기 힘들다”며 “적대국에 상당히 긍정적인 메시지가 되는 것은 분명하고, (북·미 대화 재개의) 레버리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지금보다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도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면서 1차 북·미 정상회담 후 한·미 연합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출범 후에도 북한과 대화 의지를 밝혀 온 만큼 주한미군 카드는 솔깃한 제안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두 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하더라도 한반도 평화 안정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 북한 본토 타격에 대한 우려를 감소시키고 관리하는 목적이라면 우리의 지향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다음달 들어설 차기 한국 정부에 이 문제는 가장 시급한 외교안보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발(發) 관세’와 관련한 무역 협상과 함께 주한미군 감축 및 그와 연결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포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소장은 “(주한미군 카드 활용 등) 트럼프 1기 때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개연성이 있지만 우리로서는 당시 그런 조치를 취해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얻었는지, 가령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 있는 입장을 보였는지 등으로 실효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두 연구위원은 “미 의회를 움직이는 게 중요하고, 경제안보와 묶어서 패키지 딜을 잘 하는 것이 신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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