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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다 요코 “침묵은 매우 위험… 수다가 필요한 시대”

입력 : 2025-05-20 06:00:00 수정 : 2025-05-19 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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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 작가 다와다 요코 방한
“일본과 달리 독일선 토론 활발해
韓 동물 눈에 비친 분단 그리고파”
“전쟁·자연 파괴 등 현실을 보면 우리 시대를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 때보다는 지금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평화를, 민주주의를, 평등을 위해 우리가 그간 뭔가를 열심히 해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해요. 바로 거기서 낙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가 다와다 요코가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국어인 일본어와 제2언어 독일어, 두 언어로 작품활동을 하며 전세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소설가 다와다 요코(65)는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산문화재단·교보문고가 개최하는 ‘2025 세계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위해 방한한 그는 이날 오후 교보인문학석강을 시작으로 22일까지 낭독회·북토크 등을 통해 한국 독자를 만난다. 

 

1960년 일본에서 태어나 1982년 와세다대학교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홀로 유럽을 여행한 경험을 계기로 독일로 이주했다. 터전을 옮긴 그는 1989년 독일어 소설 ‘목욕탕’을 발표했고, 1991년 ‘발뒤꿈치를 잃고서’로 일본에서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작과 학업을 병행하며 독일과 스위스에서 독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일본  아쿠타가와상·다니자키준이치로상·요미우리문학상, 독일 괴테 메달·클라이스트상 등 유력 문학상을 이미 수상했다. 대표작인 단편 ‘헌등사’ 영어 번역본으로 2018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을 받았다.

 

작가가 모어와 다른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 흔히 디아스포라·이민 문학으로 분류되지만, 다와다 요코 문학은 모어(母語)의 바깥(exo-)으로 나간다는 의미에서 ‘엑소포니’(Exophony)로 설명된다. 언어의 바깥 영역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확장적이고 실험적인 개념이다. 그는 “일본어는 전체 스토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을 때, 독일어는 좀 더 추상적인 사상을 얘기할 때 철학적 산문처럼 쓴다”고 말했다.

 

소설가 다와다 요코가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의 최근 작품 중 ‘히루코(Hiruko) 3부작’으로 불리는 장편소설 연작 ‘지구에 아로새겨진’, ‘별에 어른거리는’, ‘태양제도’는 작가의 문학세계를 보여준다.

 

유럽 유학 중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지구에서 없어지는 일을 겪은 히루코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히루코는 직접 인공언어를 만들어 구사하며, 모국어를 뛰어넘어 타인들과 우정을 나누고 소통한다. 

 

다와다 요코는 “모어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운 일로 여겨지는 게 당연하지만, 바깥으로 나가는 행위로 인해 오히려 삶의 가능성이 넓어질 수 있고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히루코 3부작엔 끊임없이 입을 놀려 말하고 또 말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묘사된다. 암울한 환경에서도 인물들은 대부분 수다스럽고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작가는 2022년 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모여 역사나 정치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하고 그 대화 자체를 즐기는 것, ‘수다’가 민주주의를 지탱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와다 요코는 “일본에선 10∼20년 전쯤부터 학생들이 서로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걸 꺼려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웠다”며 “이에 비해 독일은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활발하게 논의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침묵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서로 대화하고 수다를 떨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 세계에선 동물이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도 하다. 북극곰 3대의 이야기를 화자로 설정해 동물의 시각으로 냉전 시기 미·소대립과 동·서독 대립을 그린 ‘눈 속의 에튀드’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가는 “문학은 타자, 이질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동물은 바로 그 이질적 존재”라며 “동물의 눈에 비친 (인간) 세계를 상상하는 건 작품을 쓰는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만약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였다면 한국의 동물의 눈에 남북 분단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 작품을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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