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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보수 지지·도지사 때 실적 강점… 극우 행보·역사관 논란 [대선주자 리더십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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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9 21:22:24 수정 : 2025-05-19 21: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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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노동계 신화’서 보수 대선 후보로
서울대서 운동권 투신 노동운동 활약
투옥·고문 받으며 심상정 숨긴 일화도
YS 권유로 민자당 입당해 보수 전향
3선·경기도지사 연임… GTX 등 성과

극우 이미지로 확장성엔 물음표
자유통일당 거치며 ‘아스팔트 우파’로
尹정부서 경사노위장·고용 장관 맡아
국무위원 계엄 사과 요구 때 혼자 거부
“일제 때 선조 국적 일본” 발언 등 구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의 경선 과정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당 경선 주자 중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그는 ‘김덕수’라는 구호를 앞세웠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김 후보는 한 전 총리와 단일화 방식과 시기를 두고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이에 당 지도부는 초유의 새벽 후보 교체라는 황당한 무리수를 뒀고, 이는 당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을 되찾았다.

지난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가 기뻐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경선 과정만큼이나 김 후보의 삶도 극적이긴 마찬가지다. 한때 ‘노동운동의 신화’로 불렸던 그는 보수로 전향한 뒤 진보 진영에서 ‘잊혀진 계절’이 됐다. 국회의원 3선과 경기도지사 재선 이후 정치적 하락곡선을 그렸던 김 후보는 아스팔트로 향했다. 여의도에서 김 후보의 이름이 잊혀 갈 때쯤 김 후보에게 손을 내민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었다. 윤석열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 후보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격랑을 거치며 거대 보수정당의 대선후보 자리에 올라섰다.

세계일보는 김 후보의 인생을 톺아보는 한편 대선후보로서의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 그리고 기회(Opportunity)와 위기(Threat) 요인을 분석한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1985년 4월 인천의 한 성당에서 노동운동탄압규탄대회 방해에 항의하는 농성 시위를 이끌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의 신화가 된 ‘개천용’

김 후보는 1951년 경북 영천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7남매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지역 명문 학교인 대구 경북중과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문중의 별과 다름없었다. 김 후보가 운동권에 투신하게 된 것은 한 학번 선배인 심재권 전 의원의 운동권 동아리 ‘후진국사회연구회’(후사연) 신입생 모집 강연을 들은 뒤였다. 후사연 선배들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일대에서 자취를 하며 목격한 판자촌의 삶은 그의 결심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민청학련 사건 등에 연루돼 1971년과 1974년 두 차례 제적당한 김 후보는 노동운동에 집중한다. 청계천으로 향한 김 후보는 동대문 시장에서 온종일 옷에 구멍을 내고 쇠 단추를 박는 ‘또또’를 치고 월급 1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도루코 면도날을 만드는 한일공업으로 직장을 옮긴 김 후보는 이곳에서 노조 위원장에 선출되면서 노동운동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지도위원을 맡았던 김 후보는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 주도 혐의로 투옥됐다. 당시 김 후보가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의 위치를 숨긴 일화가 유명하다.

1988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김 후보를 맞이한 것은 이미 민주화가 이뤄진 한국 사회였다. 김 후보는 진보정당의 제도권 입성 실험에 나섰다. 이재오 전 의원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한 것이다. 그러나 민중당은 제14대 총선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득표율 미달로 정당 등록이 취소돼 해체됐다.

1994년 9월 민주자유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지구당위원장 임명장을 받으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운 오리 새끼’에서 대선후보로

실험에 실패한 김 후보는 1994년 보수로 전향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민주자유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한 것이다. 이 시기 자신의 처지에 대해 김 후보는 2006년 저서 ‘나의 길, 나의 꿈’에서 “재야에서는 나를 변절자라고 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서는 빨갱이라고 했다. 나는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서 미운 오리 새끼였다”고 아프게 회상하기도 했다.

민자당에 입당한 김 후보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특히 첫 선거인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 박지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에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중진 37명을 불출마시키는 ‘공천 개혁’을 단행하며 이름을 날렸다.

경기지사 재임 시절인 2010년 7월 부인 설난영 여사(왼쪽 세번째)와 경기 의정부시 가능역에서 무료 배식 봉사를 하기 위해 비빔밥을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2006·2010년 두 차례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연임에 성공한 김 후보는 이후 단 한 번도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다.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완패했고, 2016년 총선에선 ‘보수의 텃밭’ 대구 수성갑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에 밀려 패배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서울시장에 도전했지만, 23%를 간신히 넘기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 후보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탈당 이후 자유통일당, 기독자유통일당 등을 거치며 ‘아스팔트 우파’로 활동했다.

김 후보의 이름이 다시 정치권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22년부터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9월 김 후보를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발탁한 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보수층 확고하지만… 확장성은 ‘글쎄’

김 후보의 강점은 보수층의 확고한 지지다. 김 후보가 대선후보군에 포함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2월11일 국회 긴급 현안질문이 꼽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국무위원들이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며 기립 사과를 요구했다. 한 전 총리와 대부분의 국무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지만, 김 후보만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김 후보는 보수층에게 민주당의 대척점으로 인식됐다.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당 지도부가 후보 교체를 밀어붙였음에도 당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은 보수층의 표심을 보여주는 일화다.

경기도지사를 연임하는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줬다는 점도 김 후보의 강점이다. ‘출퇴근 혁명’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는 김 후보가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던 2008년 4월 국토해양부에 건설을 건의한 것이다.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 판교·광교 테크노밸리 조성 역시 김 후보의 실적이다.

김 후보의 확장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아스팔트 우파 활동을 통해 누적된 ‘강성 보수’ 이미지가 중도 확장을 방해해 좀처럼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선 경쟁자였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19일 김 후보를 향해 “윤 전 대통령 부부 그리고 자유통일당과 극우 유튜버 등 극단세력과 과감하게 절연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려야 한다”고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과거 발언과 역사관 논란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을 주도해 유죄가 확정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철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국적은 중국”,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 등의 발언도 재조명되면서 논란이 됐다.

지난 2024년 8월 고용노동부 장관 임명장을 수여받은 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尹 탈당’은 기회, ‘빅텐트 지연’은 위협

윤 전 대통령의 탈당은 김 후보에게 기회로 평가된다. 윤 전 대통령은 17일 “제가 국민의힘을 떠나는 것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며 국민의힘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윤 전 대통령의 거취와 관련해 ‘자진 탈당’과 ‘출당’을 두고 국민의힘 내부 분열이 있었던 만큼, 정치권에서는 김 후보가 당내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도층 이탈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혔던 윤 전 대통령이 탈당한 것을 계기로 지지율 반등을 꾀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지난 2024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사과요구를 거부한 채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 연합뉴스

‘반(反)이재명 빅텐트’ 구성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은 김 후보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김 후보는 당초 한 전 총리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포함한 빅텐트를 구상했지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내홍 이후 무산되는 분위기다. 이재명 후보와의 지지도 격차가 여전한 가운데, 사실상 유일한 연대 대상인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완주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내부 경쟁자였던 한 전 총리와 한 전 대표,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지원 사격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한 전 총리는 공동선대위원장직을 고사한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 전 대표는 20일부터 현장 지원 유세에 나설 예정이지만 선대위 합류에는 선을 긋고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 탈락 후 국민의힘을 탈당한 데 이어 연일 당을 비판하는 의견을 내놓다가 돌연 미국 하와이로 향했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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