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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모든 판사를 선거로 뽑으려는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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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9 23:29:21 수정 : 2025-05-19 23: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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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보다 정치적 성향 따라 선출 가능성
좌우 막론하고 다수당의 사법부 통제 안 돼

멕시코가 정치제도의 획기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사법부를 구성하는 모든 판사를 선거를 통해 뽑겠다는 인류 최초의 실험이다. 작년 10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임기 말에 의회에서 통과시킨 대표적인 개혁안으로 보수적 정치·경제 엘리트의 지배력이 강한 사법부를 철저하게 바꿔보겠다는 시도다.

진보 정당 모레나 후보로 재집권에 성공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신임 대통령은 오는 6월 1일 수백 명의 판사를 한꺼번에 선출하는 사법부 선거를 추진하고 있다. 이어 2027년 두 번째 사법부 선거가 완결되면 멕시코는 지역의 기초 법원부터 연방 대법원까지 모든 사법부의 판사를 선거로 뽑는 나라가 된다.

물론 아무나 판사로 입후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대를 졸업해야 하고 5년간 법무 관련 경험이 있어야 한다. 5장의 추천서가 필요하며 모레나가 통제하는 입후보 위원회의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임명이 아닌 선거를 통해 판사를 선출하면 사법부가 민주화되는 것일까. 불행히도 법률가로서의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성향을 통해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국민의 관심이 적은 가운데 소수 유권자만이 참여하는 선거에서는 정당이 동원한 투표자들이 결국 당선자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민보다는 정당의 눈치를 보며 판결할 테고 그 결과 법치 국가는 위험에 처한다.

정치 세력이 집권한 뒤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빈번했다. 특히 남미에서 1990년대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와 2000년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어 독재 정치를 펴는 데 앞장섰고, 앞서 1950년대 아르헨티나의 전설적 지도자 후안 페론도 마찬가지였다. 명분은 개혁과 변화였으나 실제는 개인적 권력의 강화였다.

심지어 미국 정치사의 진보 아이콘으로 통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조차 사법부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1930년대 뉴딜이라는 민주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보수적 대법원의 반대에 부딪히자 루스벨트는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며 대법원 판사의 퇴임 연령을 70세로 정하고 대통령이 6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는 개혁을 추진했다.

미국이 남미의 페루나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와 달리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는 당시 민주당의 놀랍도록 성숙한 태도 덕분이다. 민주당은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이었음에도 루스벨트의 사법개혁은 삼권분립의 원칙과 권력 균형을 깨뜨린다고 판단하여 가로막았다.

뉴딜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났는데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하원의 공화당 다수를 바탕으로 사법부를 무시하고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상황이다. 긴 시간이 지났다고 역사가 반드시 발전한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의 독단적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와 반대의 목소리를 현재 공화당에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 미국까지 시대와 좌우를 막론하고 권력 집중의 시도는 항상 사법부를 향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뉴딜처럼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목표를 위해서일 수도 있고 단순한 개인 권력의 강화와 독재를 위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수당의 사법부 통제 시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필연코 위험에 처한다. 집중된 권력은 기필코 남용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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