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딸을 놓지 못했다. 차가운 도시의 한 아파트 바닥 위에서 발견된 그는 손에 집 열쇠와 조그만 쪽지를 쥐고 있었다.
지난 18일 오전 6시쯤 전북 익산시 모현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아침의 고요를 깨고 옥상에서 여성이 추락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과 구조대는 이미 숨을 거둔 여성 A(60대)씨를 발견했다. 그의 몸에는 작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거기엔 단 한 줄, 하지만 너무도 무거운 문장이 적혀 있었다. ‘딸이 집에 있습니다. 먼저 떠났습니다.’

경찰은 이 쪽지를 따라 사고 지점에서 600m가량 떨어진 A씨의 아파트를 찾았고, 집 안방 한편에서 이불에 덮인 채 숨져 있는 딸 B(20대)씨를 발견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는 약 한 달 남짓. 방은 시간이 멈춘 듯 적막했고, 딸은 어머니 곁에서 그렇게 조용히 있었다.
모녀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A씨는 남편과 이혼한 이후 두 딸을 홀로 키워야 했다. 매달 120만원가량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했으나, 지난해부터 큰 딸의 소득이 발생해 긴급복지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주거급여 20여만원을 뺀 의료·생활급여 100만원가량이 뚝 끊겼다. 지병을 앓고 있는 두 모녀의 병원비와 생계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로 파악됐다.
딸은 지난 3월 말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남긴 글에는 힘겨웠던 삶에 대한 고통과 죄송함이 가득했다. 경찰은 글을 작성한 시점에 딸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을 보내지 못했다.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매일 방 안에 누운 딸 곁을 지켰다. 이웃들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던 모녀의 삶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결국 어머니는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딸 곁으로 향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두 사람의 삶은 어머니의 극단적인 선택 이후에야 조용히 조명을 받고 있다.
경찰은 A씨의 사망 경위가 분명하다고 보고 딸 B씨에 대해서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모녀가 투병과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겪은 정황을 발견했다”며 “사적인 고통이 컸던 만큼, 그 부분은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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