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10여㎞ 인근까지 확산
“베란다 하얀 빨랫감이 검게 변해”
공장 인근 주민 대피소서 하룻밤
100여명 호흡곤란·어지럼증 호소
화재 발생 32시간 만에 주불진화
회사 대표 “깊은 사죄… 신속 수습”
“창문을 아무리 닫아도 메케한 냄새와 연기가 계속 들어와 집에 있을 수가 없어요.”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화재 발생 이틀째인 18일 광주여대 체육관 임시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지낸 100여명은 호흡곤란과 어지럼증 등 고통을 호소했다. 이모(58)씨는 “목이 아프고 두통까지 있다”며 “하루 종일 공장에 야적된 고무 분진가루를 들이마셔서 생긴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금호타이어 공장 화재 현장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와 분진으로 호흡기 질환 등 2차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광주공장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휴일에 집에 있다가 베란다 문을 닫아도 틈새로 계속 들어오는 검은 연기로 집을 떠나 대피소나 친척집에 머물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박모(48)씨는 “이 정도면 대피소를 가야되는데 사정상 그럴 수 없다”며 “문이란 문은 다 비닐과 테이프로 붙였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럼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 공장 화재 직접 피해지역인 광주 광산구 서라1·2차, 삼라마이다스, 송광3차 아파트 564세대 1228명에게 인근 광주여대 체육관으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재난당국은 광주여대 체육관에 이재민 4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텐트 약 250개를 설치하고 음식과 음료 등을 비치한 상태다. 이날 오후 8시 현재 49세대 90여명이 임시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검은 연기와 고무분진은 바람을 타고 광주공장에서 직선거리로 13㎞ 떨어진 동구 계림동 상공까지 뒤덮였다. 계림동 주민 박모씨는 “베란다에 널어놓은 하얀 빨랫감이 검게 변했다”며 “공장과 많이 떨어져 안심했는데,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이곳까지 분진이 날아왔다”고 했다.
금호타이어 공장 화재는 17일 오전 7시11분 광주공장 내 생고무 20t이 적재된 정련공정 중 갑자기 오븐 장치에서 스파크가 튀면서 시작된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불이 나자 공장에 있던 400여명의 직원은 대피했으나 3층에 있던 20대 직원 1명이 대피 도중 추락해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진화 과정에서 소방대원 2명도 부상을 입었다. 광주공장 화재 주불은 발생 31시간40분 만인 이날 오후 2시50분 잡혔다. 화재 진화율이 90∼95%에 달해 당국은 화재 대응 1단계로 하향했다. 불이 난 광주공장 내 2공장은 50∼60%가 소실된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이번 금호타이어 공장 화재 역시 인재(人災)라는 의견이 나온다. 금호타이어 일부 직원들은 불이 나기 시작한 건물 입구 방화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화재 발생 수개월 전부터 방화문 작동 문제 해결을 건의했으나 사측이 묵살했다고 입을 모았다. 화재 발생 직후 대피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는 진술도 잇따랐다.
금호타이어는 광주공장 화재와 관련한 지역 주민 피해를 보상하는 한편 완성차 업체들에의 타이어 공급 안정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호타이어는 이날 회사 명의 입장문을 내고 “광주시와 광산구 관계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이번 화재로 인한 지역 주민의 피해는 확인되는 대로 최대한 보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단순한 복구를 넘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더 나은 공존과 상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일택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도 이날 현장에서 “화재 사고와 관련해 진심으로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은 금호타이어가 국내에 보유한 세 곳의 공장(광주·평택·곡성) 가운데 가장 처음 지어진 공장(1974년 설립)이다. 연간 생산 능력은 1600만개로, 국내 생산 능력(연 2700만개)의 58%에 해당한다. 다만 이번 화재로 국내 타이어 및 완성차 업계에 큰 차질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호타이어는 한국·중국·미국·베트남에 8개 공장을 운영 중이며, 곡성공장 등을 통해 대체 생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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