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은 북한을 격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며, 사실상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를 공식화한 셈이다. 그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 혹은 고정된 항공모함”이라고도 평가했다. 우리로선 주한미군 전력 차출과 이로 인한 북핵 대응 능력 약화 등 여러 변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최근 들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하는 미 군부 등의 발언이 부쩍 잦아졌다. 중국에 집중하고자 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미 행정부의 방침으로 예견된 일이다. 미국은 우선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대만해협에 문제가 생길 경우 주한미군을 대만에 투입할 개연성이 높다. 사전에 주한미군 일부를 괌이나 일본 등으로 미리 이동시키고 신속 전개 능력을 시험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주한미군의 규모나 성격 변화는 불가피하며, 한·미 연합전력의 축소 내지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얼마 전 공개된 미국의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에는 미국이 온전히 본토와 대만 방어에 주력하는 동안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과 일본 등 동맹은 ‘알아서’ 대응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일련의 입장들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미국은 1950년 1월 자국의 방어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했고, 결국 북한의 남침으로 이어졌다. 최근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북한군의 군사력이 본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우려스럽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선후보들의 안이한 상황인식은 안타깝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최근 “중국에도 ‘셰셰’(謝謝·고맙습니다) 하고 대만에도 셰셰 하고 다른 나라하고 잘 지내면 되지, 중국과 대만이 싸우든 말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아무리 국익을 앞세운 것이라 하더라도 대선후보의 발언치고는 가볍고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자체 핵 잠재력 강화를 언급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역시 동북아 안보지형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구상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권력 공백기 한·미 연합전력이 약화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조만간 들어설 새 정부는 북한 변수에만 국한해 온 주한미군의 규모나 성격 변화에 대응하는 플랜B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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