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지에 몰린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늑장 탈당하면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선 일절 사죄나 반성을 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그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의힘을 떠나는 것은 대선 승리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며 “자유와 주권 수호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이라고 썼다. 탈당 시점이나, 형식, 내용에서 국민감정은 눈곱만치도 고려하지 않은 낯 두꺼운 탈당의 변(辯)이다.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절연이 대선 이슈로 부상한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공식 선거운동 기간의 3분의 1이 다 되어서야 탈당이 이뤄졌으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내 주요 인사의 자진 탈당 권유에 묵묵부답하다가 대선 후보 TV토론 시작을 앞두고 부랴부랴 1호 당원 직을 내려놓아 진정성도 의심된다. 그마저도 국가나 국민, 적어도 당을 위한 결단이 아니라 마지못해 당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은커녕 동정도 받지 못한다. 탈당의 변에서 자유, 번영, 자유민주주의, 법치를 운운한 것에선 헛웃음마저 나온다. 대한민국 국헌·국법을 능멸해 헌법재판소로부터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법원의 심판대에 선 피고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윤 전 대통령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소동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여전히 정치 개입의 불온한 의도를 버리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 망상에 빠져 수하들을 동원해 국가와 국민을 나락에 빠트렸다. 이 점에 대해 대국민 사죄를 하고 정치 불개입을 선언했어야 마땅하다.
이런 식의 탈당이 국민의힘의 중도 확장에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김 후보는 여전히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헌재의 만장일치 파면 결정을 공산당에 비유했다. 당장 반명(반이재명) 빅텐트의 주요대상인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는 “탈당한다고 비상계엄 원죄를 지울 수 없다”며 김 후보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탄핵의 강’을 건너겠다고 약속했다. 윤 전 대통령의 탈당이 그 종점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의 탈당을 계기로 진정한 의미로 ‘탄핵의 강’을 건너 보수의 가치를 복원할 일신(一新)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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