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근로시간 ‘감축’ vs 金 근무일 ‘분산’
경제계 “경쟁력 저하 초래·양극화 심화”
월급 삭감 없으려면 정부 지원 불가피
“이미 우리나라는 근로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이 너무 길잖아요. 법으로라도 근무시간을 줄여야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더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도 야근이 많고 삶이 늘 피곤해요.”
“일하는 시간이 주 5일에서 4.5일로 줄면 당연히 생산량이 떨어질 텐데, 줄어든 시간만큼 인력을 늘려야 하고 결국 기업한테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요. 돈을 적게 버는 분들도 불만일 걸요.”

6·3 대선을 앞두고 주목받는 공약 중 하나는 ‘주 4.5일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주 4.5일제를 내세웠지만, 실현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실 근로시간 ‘감축’을, 국민의힘은 근무일 ‘분산’을 중심으로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만큼, 한국도 단계적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다만, 법 개정을 통해 공약이 실현되더라도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소득도 낮아진다는 점에서 정부의 재정 지원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노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주 4.5일제 도입을 공약했다.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포괄임금제도 손질하겠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OECD 평균 이하로 노동시간을 줄여 궁극적으로는 ‘주 4일제’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다.
이 후보 추진안에는 법정 근로시간을 감축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행 주 5일(하루 8시간) 40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줄여 주 4일은 8시간씩 일하고 금요일 등 하루는 4시간만 일하는 구조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사 합의를 기반으로 한 ‘주 52시간제 근로시간 개선’ 공약을 내놨다. 앞서 당이 발표한 ‘유연근무제를 활용한 주 4.5일제 추진’ 계획을 감안하면 현행 법정 근로시간은 그대로 유지한 채 근무 일정만 조정하는 방안에 가깝다.
예를 들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 기본 근무에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에 4시간만 일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유연한 시간 배분을 통해 실질적인 워라밸 개선 효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이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 임금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4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717시간)보다 157시간 길다.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환산하면, 한국 직장인이 OECD 평균보다 한 달 이상 더 일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노동 생산성이 선진국보다 낮아 생산성 개선 없이 법정 근로시간만 줄이면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벨기에를 제외하고 국가 차원에서 입법화해 일률적으로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유연근무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등 근로시간을 시간을 노사가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주 4.5일제가 시행되더라도,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임금도 감소한다는 점에서 더 큰 과제가 남는다. 앞서 지난 2023년 간호사 50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 시범사업을 진행한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이를 간호사 전체로 확대하려면 인력 충원 비용을 위해 임금을 최대 30% 삭감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 4.5일제가 오히려 양극화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근로시간이 줄어도 충분한 임금 수준이 유지되는 대기업이나 고소득 노동자와 달리 임금 감소에 민감한 중소기업이나 저소득 노동자에게는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 감소 없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정부의 재정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김민석 고용노동부 장관대행(차관)은 지난 7일 주 4.5일제와 관련해 “근로시간이 줄어드는데 임금이 똑같다면 시간당 임금이 올라 버틸 수 있는 데(기업)가 많겠느냐”며 “정부 재정 지원이 필요한데 정부가 얼마나 투자할 것인지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주 4.5일제의 성공 여부는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데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의 효과를 검증한 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세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나 주 4일제, 재택 원격근무 등이 논의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빠르면 5년 이내, 늦으면 10년 안에 이런 근무 형태가 구체화될 수 있다”며 “법제화 이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1주 근로시간을 40에서 36, 32시간으로 점진적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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