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둘 다 똑같이 우울함을 호소했다. 나는 일기를 써보라거나 햇볕을 많이 쬐라거나 하는 상식적인 조언을 했고 그녀는 나에게 무엇보다 세끼 밥을 잘 챙겨 먹을 것을 강조했다. 주부인 자신도,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나도 매우 불안정하니 요양보호사 자격증 같은 걸 따놓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했다. 우리는 요즘 유행한다는 디저트 ‘아사이볼’을 시켜놓고 얘기를 나눴다. 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가고 난 후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다운되며 할 말이 없어졌다.
그녀와 내가 우울한 이유가 뭘까 골똘하게 생각해 보았다. 내 또래의 남자들은 형편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주변의 여자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대부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를 한다. 정규직 일자리가 있는 또래는 그나마 공무원들이고 나머지는 거의 모두 직업이 없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어디에도 오십 대 중후반인 여성이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일자리가 있다면 덜 불행할 거라고 다들 말한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고 그렇다면 요양보호사가 우리의 미래일까, 내가 그 일을 감당할 수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우리는 또한 비슷한 증상인 수면 장애 또한 갖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 중 오백만 명 가까운 사람이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특히 많이 먹는 약이 수면 보조제 종류인데 그냥 먹고 편히 자는 게 낫다는 분위기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소설을 읽어보면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다 알 만한 수면 보조제를 먹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친구와 내가 후반에 나눈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실 자유에 대한 것이었다. 그럭저럭 열심히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도 의외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 우리 대화의 결론이었다. 아사이볼에 대해 첨언하자면 가격이 너무 비싸고 이상하게도 씁쓰레한 흙 맛이 났다.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친구와 함께 언제든 또 자유에 관해 토론해 보기로 했다는 것이 나한테는 의외의 수확이었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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